"꽃다운 나이에 군번·계급 없이 총 들었지"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23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 백발의 80대 노인 18명이 비를 맞으며 현충원 사병 제2묘역의 한 묘비 앞에 섰다. 묘비 주인은 6·25 전쟁 당시 서북(西北) 도서(島嶼) 지역에서 게릴라전을 펼쳤던 '8240부대' 소속 유격백마부대 부대장 김응수(2003년 작고)씨다.

8240부대는 미극동군사령부 소속 유격대로 지휘부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민간인으로 구성돼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격백마부대는 평안북도 정주군 일대의 치안대와 오산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돼 1950년 11월 창설했다. 현충원을 찾은 이들은 당시 계급과 군번도 없이 함께 유격대 활동을 했던 이 부대 소속 노병(老兵)과 유가족들이었다.

주름진 손으로 비에 젖은 묘비를 어루만지던 여성 유격대원 임룡녀(83)씨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임씨는 "전쟁도, 고통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이제 평안하신가요"라고 들릴 듯 말 듯 말했다. 정주여고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던 임씨는 6·25 전쟁이 터지던 해 11월 유격백마부대를 따라 애도로 피란을 갔다가 김응수 부대장의 수하였던 남편을 만났다. 김 부대장의 주선으로 정화수 한 그릇 떠놓고 결혼식을 치른 임씨는 그 후 남편과 함께 서해 도서 지역에서 중공군과 인민군을 맞아 싸웠다.

임씨는 "그땐 남녀가 따로 없었다"고 회고했다. 전투가 벌어지면 총을 들고, 총이 없으면 목창이나 돌멩이를 들고 싸움에 나섰다. 임씨는 "겨울에 M1 소총을 잡으면 총에 손이 '척척' 들러붙었고, 사격 반동으로 어깨를 다치기도 여러 번이었다"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전투에 나섰던 유격백마부대는 1954년 2월 인천 용유도에서 해산될 때까지 500여회 교전을 치르며 적군 3000여명을 사살하고 중공군 600여명을 생포했다. 그 와중에 애국 청년 2800여명, 동포 1만5000여명을 구출했다. 하지만 젊은 유격대원 552명은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산화했다.

한봉덕(87) 유격백마부대전우회 명예회장은 "정전 협정과 함께 철수 명령이 내려지자 대원들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쏘며 '아버지, 어머니! 다 온 줄 알았는데 또 고향에 가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이런 불효자식을 왜 낳으셨나요'라며 울부짖었다"고 말했다.

임씨는 "전쟁이 끝난 지 60년이 됐지만 우린 그 참혹했던 시절을 잊지 못합니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다 잊은 것 같아 안타깝네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