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영화답지 않다고? 그런 평가도 극복 중이다"

22일 하루 동안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인기 검색어는 '설국열차'(8월 1일 개봉)였다. 이날은 봉준호 감독의 신작 '설국열차'의 첫 시사가 열리는 날. 시사가 끝나자마자 SNS와 온라인에 후기(後記)가 쏟아졌다. 평가는 '역시 봉준호' 혹은 '전작만 못하다'로 갈렸다. 이튿날인 23일엔 외신까지 관련 기사를 내놓기 시작했다. 양극단의 평에 대해 봉 감독은 23일 "이런 반응을 예상 못 했다. 극복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웃음이 많은 그는 이 말을 하면서도 '허허'하고 낮은 목소리를 웃었다.

―"원작을 처음 봤을 때 최초의 매혹은 '기차'였다"고 했다. 왜 기차인가.

"기차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나. MT 갈 때도 기차 타고 간다.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밖에는 풍경이 펼쳐지니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이다. 반면, 밖에서 보면 돌진하는 무지막지한 쇳덩어리다. 남성적이고 파괴적인 느낌도 강하다. 원작을 처음 봤을 때도 기차 안에는 지저분한 생존자들이 바글바글한데 창 밖에 하얀 설원이 펼쳐진 그 느낌이 좋았다."

―기차란 제한적 공간을 어떻게 극복했나.

"허황된 욕심일지 모르지만, 시작할 땐 기차 영화의 정점을 찍겠다고 생각했다. '살인의 추억'의 터널이나 '괴물'의 하수도 같은 걸 해봤으니까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교만이었다. 막상 촬영 시작할 땐 겁이 덜컥 나더라. 배우들에게 기대며 극복했다. 배우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들을 풍경으로 썼다. 기차만 보여줘서 답답해질 것 같으면 배우의 얼굴로 카메라를 돌렸다. 존 허트나 에드 해리스 같은 배우들은 얼굴만 찍어도 풍경처럼 느껴지더라."

―이전 작품과 달리 희망을 보여주는 결말이다.

"(두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나도 좀 살자. 이러다간 내가 죽겠다. 영화제에서 '마더'를 볼 기회가 많았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그랬다. 이제 동굴에서 벗어나 햇빛 보며 끝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영화의 결말은 처음부터 고민 없이 정해져 있었다."

―지금까진 한국의 사회적 지형이 잘 드러난 영화를 만들어왔다. 이번 작품은 더 보편적 주제다.

"그게 이번 영화가 전작들과 다른 지점이고, 새로 시도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을 더 잘 보여주고 싶었다."

―그 본질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절망 끝의 희망이다. 희망에 다가서기 위해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짜가 아니다. 인간은 절망적인 시스템에서 항상 탈출하고 싶고, 그 방법을 모색하지만 고난과 대가가 따를 수밖에 없다."

―별명이 '봉테일'이라 관객들이 당신의 영화엔 매 설정과 장면에 의미를 부여한다.

"모든 게 의도고 상징이라 생각하고 이것저것 많이 물어본다. 부담스러우면서 고맙다. 관심 받지 못한 영화(데뷔작인 '플란다스의 개')를 찍었을 때의 그 스산함과 썰렁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영화 개봉하고서 공덕동 거리를 쓸쓸히 걸었던 그 기분이란…. 지금은 행복한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이 나온 지 10년이 됐다. 지난 10년은 어땠나.

"네 작품을 하면서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작품을 하는 와중에 이미 다음 작품이 정해져 있었다. 차기작이 없는 건 10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시나리오 쓰는 건 정말 고통이다. 또 써야 한다고 하면 시작도 하기 전에 병이 나는 거 같다, 어휴. 꿈도 꾼다."

―시나리오에 쫓기는 꿈?

"야산에 갔는데 꽃나무가 있다. 그 아래를 막 파보니 오동나무 상자가 나오는데 열어보면 저자도 없는, 완벽한 시나리오 7편이 있다. '이거면 앞으로 15년은 영화를 찍을 수 있겠다'며 그걸 들고 막 뛴다. 그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잠에서 깨는 것이다. 허허허."

☞'셜국열차'는…

동명의 프랑스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틸다 스윈튼과 크리스 에반스, 에드 해리스, 존 허트를 비롯한 할리우드 배우들과 송강호·고아성이 함께 연기했다. 총 450억원의 제작비가 들었다.

이 영화의 얼개는 계급투쟁이다. 머지않은 미래 빙하기 지구의 생존자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쉬지 않고 달린다. 1년에 지구 한 바퀴를 돈다. 배고프고 천대받는 사람들은 빈민굴 같은 꼬리 칸에 모여 있다. 엔진을 통제하는 사람이 맨 앞 칸을 차지하고, 그 외 선택받은 이들은 호화로운 객실에서 뒹굴고 있다.

기차 앞쪽 세상이 어떤지 전혀 모르는 채 착취당하던 꼬리 칸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켜 한 칸씩 앞으로 전진한다.

카메라는 기차의 양쪽을 오가지 않고, 이들의 전진 순서를 따라 이동한다. 호불호를 갈리게 하는 우직한 연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