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이토록 발칙한 스릴러

처음부터 날카롭게 벼린 칼끝을 급소에 겨누고선 그냥 쿡 찌른다. 그래도 끝날 때는 칼을 빼고 상처를 다독이며 인공호흡이라도 다정하게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망설임 없이 끝까지 쑥 찔러넣는다. '대중성'이란 그럴듯한 외피(外皮)를 둘러쓰고서 이렇게까지 내지르는 작품을 보는 건 실로 반가운 일이다. 김병우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는 대담하며 발칙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배경이나 상황을 설명하지 않고 바로 핵심에 들어간다.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윤영화(하정우) 앵커에게 청취자가 전화를 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고 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전화가 끊긴 직후 마포대교에서 폭탄이 터지고 윤 앵커는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테러범과의 통화를 생중계할 테니 메인뉴스 앵커 자리에 복귀시켜 달라"고 협상을 한다. 전화 내용을 통해 그가 지난 5년간 메인 뉴스 앵커 자리를 지켰지만 최근 라디오 진행자로 밀려나고 이혼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윤 앵커가 수염을 다듬으며 전화 통화를 하는, 5분도 채 안 되는 장면에서 이 정보를 다 알려준다. 러닝타임을 허투루 쓰지 않는, 참 알뜰살뜰한 영화라는 걸 영화 초반부터 보여준다.

테러범은 윤 앵커와의 전화 통화 조건으로 21억여원과 함께 대통령의 방송 출연을 요구한다. 선진국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포대교 보수공사에 동원된 일용직 노동자 세 명이 강에 빠져 죽었으니,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선 윤 앵커와 계속 통화를 하기 위해 그의 귀 안에 들어있는 이어폰에 폭탄이 설치돼 있다고 협박한다. 윤 앵커는 자신과 마포대교 상판에 있는 생존자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습도 보이지 않는 테러범과 목소리로만 싸운다.

이때부터 '더 테러 라이브'는 곁눈질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 테러범과의 전화 통화가 생중계되는 방송국 부스에서 카메라는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마포대교 상판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자동차에서 어린이들을 구출하는 긴박한 장면조차도 방송국 내의 TV 화면으로 흐릿하게 보여준다. 대신 보도국장과 정부 관계자, 경찰청장 등이 라디오 부스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자신의 권력과 이해관계에 따라 상황을 바꾸려는 이들 때문에 화면 속 역학관계가 쉴 새 없이 요동치고 긴장감이 팽팽하게 유지된다.

그리고 이 모든 드라마와 긴장의 중심에는 배우 하정우가 있다. 그는 상대 배우의 리액션이 거의 없이 영화 전체의 70％를 혼자서 전화 통화로 이끌어 가는 모놀로그에 가까운 연기를 펼친다. 그리고선 세상에서 그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는 듯이 연기한다. 예컨대 테러범과 본격적인 통화를 하기 전에 그는 이혼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딴 놈이랑 골프를 치느라 전화를 안 받느냐"고 윽박질러 놓고선 곧바로 "이 일만 잘되면 다시 합치자"고 한다. 기름과 물 같은 두 문장을 한 번에 이야기하면서도 그는 얍삽하면서도 당당하고, 그리고 때로는 비굴한 캐릭터를 한 번에 보여준다. 김 감독의 영리한 연출은 주연배우의 연기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올여름 성수기에 개봉하는 상업 영화의 그것 중 가장 뜨거울 것이다.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상업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기대를 너무나 간단히 배반한다. 어떤 이들은 화를 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힘이 빠질 것이다. 하지만 뭐라 느끼든 간에 한국의 뒤틀린 사회·정치적 지형 안에서 계급적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은 감독의 발언은 강력하게 전달될 것이다. 그 방식이 100％ 완전한 것도 아니고, 거친 구석도 드문드문 보이긴 하지만 일단 반갑다. 패기와 뚝심이 느껴지는 신인 감독의 영화를 만나는 게 언제나 그렇듯이. 8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