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수료 내렸는데도 은행은 8053억 더 벌어… 이래도 또 올린다고?

금융감독당국이 수익 악화를 호소하는 은행들을 위해 수수료를 올려줄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정작 은행권 수수료 수익은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수수료 인상 명분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손익계산서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은행들은 2009년 7조2946억원, 2010년 7조6081억원을 수수료 수익으로 벌어들였고, 2011년과 2012년에도 7조8217억원, 8조1998억원의 수수료 수익을 올렸다. 2011년부터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송금·인출 수수료 등을 내렸지만 수수료 수익은 오히려 전년에 비해 각각 2136억원, 3781억원씩 증가한 것이다. 수수료를 내리기 전인 2010년과 비교하면, 수수료를 내렸음에도 2년간 총 8053억원이나 수수료 수익이 늘어난 셈이다. 이는 전체 100여개의 수수료 중 6.8%에 불과한 송금·인출 등 일부 수수료만 찔끔 내리고 생색을 냈기 때문이다.

◇찔끔 내리고 생색

은행이 각종 서비스를 제공한 대가로 받아가는 수수료는 은행마다 100개 정도인데, 금융권에선 크게 3가지로 구분한다. 자동화기기(ATM)나 창구를 이용해 송금하거나 돈을 찾을 때 내는 '대(對)고객 수수료'와 은행 창구에서 펀드나 보험(방카슈랑스)을 판매한 대가로 받는 '업무대행 수수료', 신탁이나 외환 업무를 하고서 고객에게 받는 '기타 수수료' 등이 있다.

모두 고객이 부담하는 수수료지만, 은행들이 업무의 성격에 따라 나눈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은행의 전체 수수료 수익 중 대고객 수수료 비중은 6.8%, 업무대행 수수료 23.6%, 기타 수수료는 69.6%를 차지한다.

2011년 초 금융권이 과도하게 수익을 챙겨 간다는 거센 비판이 제기되자 금감원은 2011년 8월 은행 담당자를 불러 놓고 "불합리한 수수료를 개선해야 한다"며 수수료를 내리라고 강력하게 압박했다. 이에 따라 국민·신한 등 은행들은 같은 해 10월부터 일제히 수수료를 내렸다.

각 은행은 10~15개의 수수료를 내렸는데, 대부분 전체 수수료의 6.8%에 불과한 '대고객 수수료'였다. 예컨대 고객들이 다른 은행 ATM을 이용할 때 내는 수수료를 400~600원씩, 10만원 이하를 출금할 때 수수료를 기존 500원에서 250원 등으로 낮췄다. 반면 수익 비중이 큰 다른 수수료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당시에는 여론이 좋지 않아 고객들이 쉽게 느낄 수 있는 수수료를 중심으로 내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올해 1분기엔 수수료 수익이 1조808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조360억원에 비해 2273억원이 적었다. 이 역시 송금·인출 수수료가 낮게 책정됐기 때문은 아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올해 수수료 수익이 줄어든 것은 경기 침체로 펀드 판매나 신탁 업무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지 송금·인출 수수료가 낮게 책정돼서 그런 것은 아니다"고 털어놨다.

◇고객 부담 대폭 늘 수도

현재 경기 침체와 저금리의 여파로 은행의 수익성이 악화되자 금융당국은 수수료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6일 "금융권의 수익 기반 확대를 위해 각종 수수료를 현실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송금·인출뿐 아니라 외환·펀드·신탁 등에 관련한 모든 은행 업무에 대해 서비스 제공 원가를 산출해 수수료를 책정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과거에 내리지 않았던 수수료까지 인상되는 등 인상 폭이 크고, 고객 부담도 크게 늘 수도 있다. 은행 입장에서 수수료가 일제히 오르면 추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수익을 대폭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물론 정치권까지 반발하고 있다. 반대 여론이 거세지자 금감원은 "수수료를 올린다고 한 적이 없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은행권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시중 은행의 한 임원은 "은행이 수수료 올려달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금감원이 먼저 나서는 바람에 은행도 함께 욕을 먹고 있다"며 "수수료 올리는 것에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경기가 호전돼야 은행 수익성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