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환자 손발 묶는 대신… '벙어리장갑' 씌워주는 요양병원

치매나 뇌졸중 후유증을 앓는 환자들이 입원하는 경남 창원시의 요양 재활 전문인 희연병원. 이곳 병실에서는 일반적인 노인 전문 병원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 눈에 띄었다. 음식을 삼키지 못해 코에 위장(胃臟) 튜브를 꽂은 채 누워 있는 노인 환자가 손에 권투 장갑보다도 더 큰 벙어리장갑을 끼고 있었다.

이 병원에 입원한 노인 환자 414명 가운데 신체 일부가 묶인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게 특이했다. 일반적으로 치매나 뇌졸중 환자를 돌보는 노인 요양 병원에서는 정신이 혼미한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환자의 손과 발을 병동 침대에 묶어 두기도 한다. 환자들이 코 줄이나 소변 줄을 맘대로 뽑고, 때론 인공호흡기까지 건드려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희연병원은 어떤 상황에서도 환자의 손발을 묶지 않는다. 대신 환자가 의료 기기나 기구를 손가락으로 만질 수 없도록 특수 고안한 벙어리장갑을 씌운다.

이 병원도 지난 2008년까지는 환자 6~7명당 1명꼴로 손발을 묶어 두었다. 그러다 '인간 존엄성 확립'이라는 목표로 '신체 억제 제로(0)'에 도전한 결과, 2011년 7월부터는 단 한 명의 환자도 묶어두지 않았다. 이 병원은 홈페이지에 신체 억제 환자 수를 매일 공개하는데, 2년째 매일 제로다.

전국에 1100여개 요양 병원이 있지만, 이런 돌봄을 하는 곳을 찾기는 힘들다. 이 '신체 억제 제로'는 병원을 설립한 김덕진 이사장이 우리나라보다 더 일찍 고령사회로 진입해 노인 요양 분야에서 앞서 있는 일본에서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병원의 또 다른 특이점은 2시간마다 음악이 흘러나온다는 점이다. 이 음악에 맞춰 전 의료진이 일제히 환자의 자세를 바꿔 준다. 밤에는 3시간마다 한다. 이는 노인 환자들의 욕창 발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거동이 불편해 내내 누워 지내는 노인 환자들은 엉덩이나 등이 짓무르고 궤양이 생기는 욕창이 생기기 쉽다. 욕창은 한번 생기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심지어 세균에 감염되면 생명까지 위협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만약 환자 몸에 없던 욕창이 생기면 이 병원에서는 '의료 사고' 상황으로 여기고, 담당 간호사한테 시말서를 쓰게 한다.

욕창은 영양 상태가 나빠도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환자의 영양도 집중적으로 관리한다. 법적으로 고용해야 할 영양사는 2명인데, 이곳은 영양사 6명을 고용해 환자마다 필요한 식단을 달리 짠다. 국내 요양병원으로는 처음으로 치위생사를 상근시켜 환자 구강 케어도 해준다. 누워만 있는 환자들은 음식물 찌꺼기가 폐로 들어가 폐렴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앞선 노인 케어를 하는 것이 소문나, 지난해만 해도 전국의 60개 요양 기관에서 이곳을 견학하고 돌아갔다. 김덕진 이사장은 "환자의 일거수일투족과 가족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한 뒤, 통합 케어 팀장(간호사)을 중심으로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영양사, 사회복지사 등이 환자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면 굳이 환자를 묶지 않아도 얼마든지 안전하게 환자를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