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돌이는 취직 못해?"… 기초과학 미래에 투자하다

인터넷 쇼핑몰업체인 인터파크가 작년 11월부터 본업(本業)과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나 벌이고 있다. 대중(大衆)을 상대로 한 수학·과학 콘서트다. 세계적인 수학자와 과학자들을 초청해 초·중·고생을 비롯한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자연과학을 소개하는 토크 콘서트 '카오스(K.A.O.S· Knowledge Awake On Stage)'로, '무대 위에서 지식이 깨어난다'는 뜻이다. 작년 11월 첫 콘서트 이후 반기마다 행사를 가지며, 오는 10월 세 번째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다.

◇성공한 벤처 1세대, 기초과학 저변 확대에 투자

콘서트 아이디어를 낸 것은 인터파크 창업자인 '벤처 1세대' 이기형(李奇衡·50) 회장. "지금 우리 사회를 그냥 놔두면 게임밖에 살아남을 게 없어요. 아이들은 게임에만 몰입하고, 게임업체들은 어떻게 하면 이용자들을 중독시킬까 고민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나라를 짊어지고 가겠습니까."

그가 수학·과학 콘서트를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에선 이공계로 간다고 하면 부모가 뜯어말리고, '공돌이'라고 부르고 편견이 심하잖아요. 이공계 가면 평생 공부만 하고 취업도 잘 안 된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기업에선 자연과학적 사고를 하는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대학도, 사회도 모두 외면하니 우리가 직접 롤모델을 제시하고 캠페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회장은 가까운 대학 동기들에게 이 같은 구상을 털어놨다. 수학자인 포항공대 박형주 교수와 영국 옥스퍼드대 김민형 교수가 "좋은 생각"이라며 의기투합했다. 비용은 이 회장이 전액 부담하기로 했다.

박형주 교수는 매회 콘서트 사회를 맡는다. 첫 회엔 김민형 교수, 두 번째엔 컬럼비아대 김필립 교수가 무대에 섰다. 반응은 뜨거웠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인터파크 아트센터에서 개최했는데 전국 각지에서 학생, 주부, 직장인들이 기차 타고 상경(上京)해 매 회 420여석을 꽉 채웠다. 이 회장은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수학자, 과학자의 사인을 받고 진지한 얼굴로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서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오는 10월에는 현대음악가 진은숙씨를 초청해 '수학과 음악의 만남'을 주제로 강의와 퍼포먼스를 열 예정이다. 장소도 1000여석 규모인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로 옮겨 개최하기로 했다.

이 회장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를 졸업한 자연과학도다. 그는 평소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공개 강의 비디오를 보는 것이 취미라고 했다. 그는 수학·과학 콘서트가 자리를 잡으면 종이책은 물론 전자책, 동영상 등으로 제작해 유튜브·페이스북 등 다양한 채널로 전파할 생각도 갖고 있다. 이른바 자연과학을 주제로 한 '한국판 TED'를 만들겠다는 목표다.

◇'창업자 겸 최대주주' CEO로 책임경영

이 회장은 1996년 국내에 인터넷 쇼핑몰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한 '벤처 1세대'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삼성SDI를 거쳐 데이콤에서 사내벤처 형태로 인터파크를 창업했다. 자회사 G마켓을 만들어, 미국 이베이에 4700억원에 매각했을 만큼 추진력과 사업 능력도 뛰어나다.

다른 벤처 1세대와 다른 점은 창업자이자 최대주주(35.86%)로서 명확히 책임경영을 한다는 것. 2008년 초 경영 일선에서 잠시 물러났다가 G마켓 매각(2009년) 이후, 회사가 흔들리자 2010년 다시 CEO로 복귀했다. 3년 만인 현재 인터파크의 실적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는 "중요한 순간에 CEO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좌우명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제목에서 따왔다. 그는 “현재 가는 길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다만 지금 가는 길을 맞게 만들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인터파크는 소비자끼리 거래(C2C)하는 ‘오픈마켓’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기업과 소비자를 모두 상대(B2B·B2C)하는 ‘종합 쇼핑몰’로 진화(進化)했다. 현재 국내 온라인 항공권과 공연 티켓 판매 분야 1위다. 도서는 ‘예스24’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2011년 G마켓 매각 대금으로 삼성에서 인수한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업체 IMK(아이마켓코리아)를 필두로 미국·중국·베트남·슬로바키아·멕시코 등 해외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회장은 “B2B(기업 간 거래) 사업을 통해 우선 해외시장의 문화와 서비스를 차근차근 이해하고, 3~4년 내에는 해외에서 본격적인 쇼핑몰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