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가 분장하고 장난하듯 캐릭터 갖고 놀았죠"

천사이자 악마이고, 남자이자 여자이기도 한, 한마디로 이 세상의 인간으로 보기 힘든 틸다 스윈턴(53)은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속에서도 월광(月光)처럼 흰빛을 발했다. '설국열차'(감독 봉준호)에 출연한 스윈턴은 개봉을 맞아 29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감독 및 출연진들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 영화에서 스윈턴은 섬세한 골격과 새하얀 피부를 틀니와 두꺼운 안경, 특수분장으로 가리고서 기차 안의 2인자 '메이슨'을 연기했다. 목소리와 말투까지 싹 바꾼 탓에 본래 모습의 흔적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스스로 더 돼지 같은 코, 더 늘어진 턱살을 요구하는 바람에 봉 감독의 예상보다 더 못생긴 캐릭터가 탄생했다. 그는 의상과 분장을 의논하기 위해 봉 감독과 영화 의상 담당자를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신의 집에 불러 요리를 해주고 옷장을 열어 '패션쇼'를 한판 벌이기도 했다.

스윈턴은 "난 영화를 찍을 때마다 다음엔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생각한다. 2년 전 칸 영화제에서 봉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영화를 찍는다면 재밌고, 즐거워야 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우리는 영화 아이디어와 메이슨이란 캐릭터를 갖고 놀았어요. (코를 들어 보이며) 이런 코를 해보고 싶다는 판타지를 갖고 있었지만 봉 감독이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죠. 여섯 살짜리 꼬마가 할머니나 강아지 분장을 하며 노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재밌게 했어요."

스윈턴은 상업과 예술영화를 오가며 다른 여배우들이 오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그는 얼음 마녀도 했다가 타락한 천사도 하고, 한 영화 안에서 남자가 됐다 여자도 되며, 알코올중독자가 어울리는가 싶더니 상류층 마님도 완벽하게 소화한다. '창백한 카멜레온'이라 불리는 그는 2009년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봉 감독은 "틸다는 스스로를 프로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연기도 그가 하는 많은 활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올해 초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유리관 안에서 잠을 자는 행위예술 '더 메이비(The Maybe)'를 선보였다. 기자회견 중 한 기자가 한국인과 함께 작업한 소감을 묻자 그는 "나는 이 영화를 찍으면서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놀듯이 함께 사람들과 놀았다. 예술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있는 자유로운 기회다. 나는 누가 어디서 왔는지 신경 쓰지 않으니 국적에 관한 이야기는 그만해달라"고 했다. "왜 봉준호 영화에 출연하냐고요? 봉준호. 그의 작품뿐만 아니라 사람 때문에요. 이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은 가족이었고, 봉 감독은 덩치가 큰 아이(big child) 같은 가장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