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이 안 보인다

[스크린에선 '연애' 실종]

장르 상관없이 등장하던 로맨스
최근 한국영화에선 보기 힘들어…
'브로맨스' 같은 형제애가 차지

스크린에서 로맨스가 사라졌다. 장르에 상관없이 사랑에 빠진 남녀가 최소 한 쌍은 등장하던 한국 대중 영화의 관습이 깨진 것이다.

작년에 흥행한 '도둑들'과 '광해' 때만 해도 남녀 간의 '밀고 당기기'나 연정(戀情)은 빠지지 않았다. 그게 중심 주제는 아니더라도 극의 재미를 위한 보조 역할 정도는 해왔다. 하지만 올해 한국 영화 흥행 10위권에 든 작품 중 '연애의 온도' '타워' 정도를 제외하면 남녀 간의 사랑이 등장한 영화는 찾아보기 힘들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7번 방의 선물'은 남자 교도소 안에서 부녀(父女)의 정을 다루고 있으며 '신세계'와 '전설의 주먹'은 남자들의 세계를 그리는 데만 집중해 여자들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감시자들'. 멜로 영화에 자주 나왔던 한효주가 여자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영화 속 어느 누구와도 직장 동료 이상의 감정을 나누지 않는다. 한효주는 물론, 황반장(설경구)과 이실장(진경)의 로맨스도 없었다. 과거 한국 영화에서 전체 맥락에선 개연성 없이도 반드시 등장시켰던 로맨스를 과감히 빼버린 것이다.

촉촉한 핑크빛을 뺀 영화를 관객과 평단은 오히려 더 환영하는 추세다. 흥행 10위권 영화 중 멜로가 아니면서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다룬 건 재난 영화인 '타워'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비평적으로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고, 눈곱만큼의 '사랑'도 없이 건조하게 연출된 '신세계'나 '감시자들'이 오히려 '제대로 만든 장르영화'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대중문화평론가 김원씨는 "연애를 하기 팍팍한 현실을 영화가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영화 안에서 주인공들도 생사가 걸린 싸움을 하고 있는데 연애를 할 겨를이 어디 있겠냐.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이라고 보는 것이다"라고 했다.

남녀 간의 로맨스가 사라진 자리는 남자 간의 '브로맨스'가 대신한다. '브로맨스'는 '브러더'(brother)와 '로맨스'(romance)를 합친 신조어로 인터넷 은어 사전인 '어반 딕셔너리'에서는 이를 '이성애자 남자들끼리 갖는, 설명하기 힘든 사랑이나 애정관계'로 정의하고 있다. 올 상반기 흥행작을 살펴보면 로맨스를 외면한 관객들이 '브로맨스'에는 열광했다. '신세계'에서 정청(황정민)이 조직의 후배인 이자성(이정재)을 "브러더"라고 부르며 감싸주자 영화를 본 남자 관객들 일부는 정청의 말투까지 흉내 내며 '브러더'를 외쳤다. '은밀하게 위대하게'에선 주인공 원류환(김수현)이 동생처럼 챙기는 리해진(이현우)의 머리만 한 번 쓰다듬어도 여성 관객들이 환호했다. 김원씨는 "전장(戰場)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볼 수 있는 동료애나 형제애 같은 것이 남녀의 사랑보다 더 각광받고 있다. '네가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공동체적 생존 의식이 오히려 '브로맨스'를 공고하게 만들어줬다"고 했다.

[노래방에선 '신곡' 실종]

음원 휩쓴 곡, 노래방에선 '찬밥'
따라부르기 어렵고 유행도 짧아…
'음원 순위=애창 순위' 공식 깨져

음원(音源) 차트 정상을 휩쓴 노래들이 정작 노래방에서는 '실종' 상태다. 최근 듣는 순위와 부르는 순위의 이른바 디커플링(decoupling·비동조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올 상반기 국내 최대 음원 유통업체인 멜론의 음원 순위 상위 10곡과, 노래방 기기업체인 TJ미디어의 애창곡 상위 10곡을 비교해본 결과 허각의 '모노드라마'(음원 4위·노래방 5위) 한 곡을 빼곤 겹치는 노래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간 음원 차트 정상을 차지한 배치기의 '눈물샤워'는 노래방 순위에서 20위, 반대로 노래방 순위 맨 위에 있는 노래는 26년 전 발표됐다가 작년 오디션 프로 경연곡으로 화제가 된 '먼지가 되어'다. 2위 이지의 '응급실'(2005년), 3위 긱스의 '오피셜리 미싱 유'(2011년), 6위 이승철의 '말리꽃'(2000년) 등 '묵은 노래'들이 노래방 차트 최상위권에 포진해 있었다. 반면 올 상반기 음원 순위 2위였던 리쌍의 '눈물'은 노래방 순위 100위에도 들지 못했고, 씨스타19의 '있다 없으니까'(3위), 다비치의 '거북이'(5위), 싸이의 '젠틀맨'(6위)도 노래방 차트에선 20~70위권으로 부진했다.

2~3년 전만 해도 노래방 순위와 음원 순위는 대체로 함께 갔다〈표 참조〉. 2010년 상반기엔 그룹 2AM의 '죽어도 못 보내'가 음원 차트와 노래방 차트를 동시 제패했고, 소녀시대의 '오'와 씨엔블루의 '외톨이야' 등 총 5곡이 음원·노래방 톱 10에 동시에 올랐었다. 미쓰에이의 '배드 걸 굿 걸', 옴므의 '밥만 잘 먹더라'(이상 2010년), 아이유의 '좋은 날'(2011년), 티아라의 '롤리 폴리',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이상 2012년) 등도 발표 당시 '많이 듣고, 많이 부르는 노래'로 차트에서 공인(公認)받았다.

신곡이 노래방 순위에서 좀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최근 현상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먼저 신곡에 대한 피로감. 아이돌 가수들의 신곡은 멜로디 라인과 박자가 지나치게 난해하고, 부쩍 많이 발표되는 힙합 곡들도 랩 위주여서 '입에 쩍쩍 붙는' 가사와 곡을 선호하는 노래방에서 쉽게 선택되기 어렵다.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김진우 수석전문위원은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음악 차트 1위에 오르는 노래는 차트 50위 안에 평균 20주가량 머물렀지만, 최근에는 평균 11주까지 짧아졌고 앞으로 그 기간은 더 줄어들 것"이라며 "한 곡을 제대로 음미하고 욀 시간도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라고 말했다.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가 안방극장을 장악하면서 경연곡으로 선택된 노래들이 크게 주목받는 현상도 역시 신곡의 힘을 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경준 대중음악평론가는 "최소한 지금 나오는 노래들에 대해 대중은 빨리 접하는 만큼 빨리 질리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