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31 09:42

THIS MAN | 국내 1호 채식 요리 연구가 이도경

나는 채식 요리 연구가입니다

내가 처음 채식 요리 연구가의 길로 들어선 20여 년 전만 해도 채식주의에 반기를 드는 이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어느새 채식주의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과거 굶주리던 시절에는 무조건 끼니 걱정만 했지만, 지금은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건강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채식은 필연적인 선택입니다. 내 건강은 물론이고 지구의 건강까지 챙길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나의 채식 요리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갑니다. 이름하여 ‘소울 푸드(soul food)’. 나는 음식이 단순히 몸뿐 아니라 마음, 영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봅니다. 불교에서 파·마늘·달래·부추·무릇, 즉 오신채(五辛菜)를 금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죠. 매운 것, 자극적인 것을 먹고는 참선을 행할 수 없다는 뜻에서입니다. 자극적인 것은 사람을 거칠게 만들죠. 육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육식을 하는 사람은 난폭한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어요. 물과 빛 자체인 채식과는 다르죠. 그러니 먹는 음식을 통해 우리 자신을 다스리자는 것, 이것이 내가 이야기하는 소울 푸드의 핵심입니다.

이도경

평화를 부르는 채식 정신

내가 처음 채식주의자가 된 계기는 조금 특별합니다. 10~20대 시절의 나는 알아주는 괴짜(!)였는데, 사춘기 무렵부터 종교철학에 꽂혀 지냈더랬습니다. 소년들이 으레 축구나 기타에 홀리듯이 나는 철학에 많은 관심을 쏟는 아이였어요. 20대가 되어서는 나름의 답을 찾기 위해 각종 서적을 독파하고, 선지식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기도 했습니다. 신문에서 수련을 행하는 도인의 기사를 보면 당장 그분을 만나러 길을 나섰죠.

부모님의 뜻에 따라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긴 했지만, 졸업하고 나서도 제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어요. 돈 버는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고 밤낮 수행을 한답시고 전국을 떠도는 장손 때문에 부모님이 속을 많이 끓이셨죠. 그 시절 번듯한 직장에 취직하는 대신 한약방에서 일하며 한의학을 공부했고, 주역과 관상학을 익혔어요.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명상을 만났고, 이십대 후반에는 내가 지닌 기존의 생활 방식이 명상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모두 끊었습니다. 술과 담배와 육식을요.

여기에서는 ‘아힘사(ahimsa)’라는 개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언젠가부터 나는 여러 성인이 설파한 불살생(不殺生), 즉 생명의 소중함을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채식이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채식을 하면 세상은 자연히 평화로워진다고 믿습니다. 생명을, 그것이 비록 하찮은 미물이라 할지라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 사람을 해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반대로,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가길 바라는 것은 맞지 않는 셈이죠. 생명, 비폭력을 지향하는 이들은 철저히 채식을 하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내 성향이나 내가 쌓아온 갖가지 경험이 모두 오늘날의 소울 푸드에 녹아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쩌면 오늘날 채식 요리 전문가가 된 것 역시 내게는 무척 익숙한 길이었습니다. 농촌에서 자라 각종 채소와 친숙했고, 어릴 때부터 워낙 요리를 좋아했으니까요. 웬만한 한식 메뉴는 곧잘 만들어내곤 했죠. 대학생 시절 음식점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주방일을 배우며 요리의 기초를 다지고, 1996년 본격적으로 채식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어요. 6년간 채식 식당에서 일하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02년부터는 식당 경영과 소울 푸드 강의, 외부 특강, 채식 컨설팅 등을 겸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죠.

채식, 어렵지 않아요

나는 아침을 제외한 하루 두 끼 식사를 기본으로 합니다. 특별한 메뉴는 없고 그저 한식을 기반으로 한 음식들이죠. 주변을 둘러보면 채식을 어렵게 여기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냥 일반 식당에서 한식을 먹되 생선 대신 김이나 다시마 같은 해조류를, 고기 대신 콩이나 버섯을, 달걀 대신 두부를 먹으면 됩니다. 처음엔 오랜 습관 때문에 어렵겠지만 차차 적응할 수 있어요. 일정 시기가 지나면 입맛도 새로운 식단에 익숙해질 테니까요.

일부 사람들은 채식이 오히려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닌가 우려하기도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채식을 하면 오히려 스태미나가 강화되죠. 스태미나는 곧 장수(長壽)로 이어집니다. 콩밥에 김치와 나물 몇 가지만으로도 단백질, 지방, 비타민 등을 충분히 얻을 수 있어요. 단, 잘못된 채식은 경계해야 합니다. 채식을 하되 너무 과식하는 경우, 채식하면서 인스턴트를 즐기는 경우 말이죠. 음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생명력이에요. 생명력 없는 채식은 외려 몸을 병들게 한다는 걸 명심하세요.

석가모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큰 병은 다름 아닌 무지(無知)다.” 지금 우리는 음식에 대해, 건강에 대해, 영성(靈性)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함부로 하는 것인지도 모르죠. 채식을 이해하고 실천하면 분명 지혜로워질 겁니다. 채식은 지혜로 나아가는 길임을, 내가 장담하죠.


☞ 이도경(46) 씨는 국내에 채식 요리가 생소하던 10여 년 전부터 채식 요리와 식이요법, 자연건강법, 동양철학을 통합한 ‘소울 푸드’ 강의를 통해 채식과 건강의 연관성을 연구해온 채식 요리 연구가다. ‘이도경의 소울 푸드&채식 아카데미’ 를 비롯해 각종 칼럼, 특강, 채식 컨설팅 등을 통해 채식의 이로움을 전파하고 있다. 저서로 <영혼의 음식>, <다이어트건강도시락>, <나는 채식요리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