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전통과 고도 기술의 집약체인 기계식 시계는 남자의 취향과 능력,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한다. 편리함을 중시하는 디지털 시대에도 가치를 더하는 아날로그 시계. 남자들이 이에 매료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시계의 기본적 가치는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에 있다. 그러나 그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진다. 정확성에 중점을 둔다면 시계가 아닌 휴대폰의 시계 기능(컴퓨터처럼 정확한)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 편리성을 따진다면 건전지로 구동하는 쿼츠 시계면 충분하다. 만약 시계에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 선택은 분명 ‘기계식 시계’일 것이다. 고가의 기계식 시계에 열광하는 남성들이 늘고 있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다.
그런데 불과 2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점차 손목 위에서 기계식 시계를 보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예언했다. 1970~1980년대 쿼츠 시계의 열풍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은 기계식 시계 업계는 미처 그 상처를 치유할 시간도 없이 휴대폰이라는 더 강력한 적과 대적해야 했다. 1990년대 초부터 휴대폰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휴대폰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값싼 전자시계의 대중화로 이미 심각한 위기를 맞은 기계식 시계는 휴대폰의 등장으로 인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듯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어떤가? 거의 모든 사람이 휴대폰을 쓰고, 더 똑똑해진 스마트폰으로 세계 시간부터 스톱워치, 알람 기능까지 확인할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기계식 시계를 갈구하고 있다. 기계식 시계 애호가 중에는 남성들이 특히 많은데, 이는 여성들이 명품 가방이나 고가의 디자이너 슈즈에 열광하는 것에 종종 비견된다. 손목 위 시계는 그 사람의 취향, 능력을 어느 정도 대변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최근 두드러진 기계식 시계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로마의 문화를 부흥하고자 했던 14~16세기의 르네상스를 떠오르게 한다.
시계는 수백 년 전부터 상류층이나 부유층만 지닐 수 있는 고급품이었다. 광장이나 성당의 시계탑으로 시간을 알려주던 시대를 지나 몸에 지니고 착용할 수 있는 회중시계가 처음 등장한 17세기부터 전자시계가 발명되기 전인 1960년대까지도 시계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값싼 전자시계의 물량 공세로 인해 기계식 시계는 대중 시장에서 잠시 그 빛을 잃었다가 이제 다시 ‘소중한 물건’으로서 가치를 재평가 받고 있는 것이다.
인간적 향내를 품은 아날로그 시계
기계식 시계의 매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아날로그’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의 일정 관리 프로그램이 아닌 다이어리로 스케줄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사람들, 사용이 번거롭고 불편해도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낡은 LP판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더 진한 감동을 느끼는 사람들은 모두 아날로그에 매료된 사람들이다. 기계식 시계는 사람의 손을 타야만 움직이는 인간미 가득한 아날로그의 집약체라 할 수 있다. 디지털이 더 이상 새롭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시대에 사람들은 아날로그에 눈을 돌렸다.
남자들이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시계라는 물건이 지닌 특성 때문이다. 명품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가 높아지면서 명품 구두나 가방은 일반 직장인들도 돈을 모으면 살 수 있다. 그런데 시계는 패션 아이템보다 가격대가 높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여러 개를 구입할 수 없다. 또한 고가의 기계식 시계는 20~30대의 젊은 남성에게는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중년 남성들은 “중년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멋있어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시계다”라고 말한다. 종종 자동차와 시계를 비교하기도 한다. 자동차는 많이 구입하면 세워둘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많아야 2~3대 정도의 차를 번갈아 탈 뿐이다. 시계는 경제적 능력만 있다면 자동차보다 제약이 훨씬 덜하다.
뿐만 아니라 시계는 언제나 남자와 함께한다. 자동차를 보고 그 남자의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능력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그가 어떤 자동차를 타는지 알아야 가능하다. 남자가 손목에 찬 시계는 자동차를 보지 않아도, 그가 신은 구두가 어느 브랜드인지 몰라도 남자의 능력과 취향을 대변해준다. 40대의 한 남성은 “사업가라면 자신에게 맞는 시계를 선택할 줄 아는 안목도 지녀야 한다. 업무 관계로 처음 만난 파트너가 나와 같은 브랜드의 시계를 차고 있다면 일단 그 사람에게 신뢰를 느낀다”고 말한다.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유혹
현대 산업사회의 결과물로 탄생한 전자시계는 편리함과 정확성이라는 장점을 지녔다. 첨단의 시대에 기계식 시계에 대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갈망하는 것은 분명 디지털 시대를 거스르는 아이러니한 트렌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식 시계가 다시 명맥을 확고히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100~200년을 이어온 브랜드의 전통과 가치, 생명력 넘치는 맥박과도 같은 무브먼트의 움직임, 예술품에 버금가는 디자인, 장인의 손길로 완성한 정밀한 미감, 한정된 수량의 리미티드 에디션….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기계식 시계 열풍은 현대인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생활 속에서 기계식 시계는 과거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인간의 기술력과 워치메이커의 장인 정신 그리고 소장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긴 기계식 시계를 향한 마법 같은 열정은 앞으로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