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만에 찾은 저도(猪島·거제시 장목면)… 부모님 그리움 밀려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름휴가 이틀째인 30일 저녁 6시쯤 페이스북에 휴가 장소를 공개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의 저도(猪島)였다. 저도는 1954년부터 1993년까지 대통령 휴양지로 활용됐고, 현재도 섬 전역을 군이 관리하고 있어 경호가 용이하다.

저도 해변은 박 대통령이 성심여고 1학년 때인 1967년 7월 박정희 전 대통령 등 가족과 함께 휴가를 가서 '비키니'를 입고 사진을 찍었던 장소로 알려져 있다.

박 대통령은 휴가지에서 찍은 사진을 5장 공개했고 '추억 속의 저도'란 제목의 글도 올렸다. 박 대통령은 글에서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는 저도의 모습… 늘 평화롭고 아름다운 자연의 자태는 마음을 사로잡는다. 복잡하고 힘든 일상을 떠나 마음을 식히고 자연과 어우러진 백사장을 걸으며…"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또 "35년여 지난 오랜 세월 속에 늘 저도의 추억이 가슴 한쪽에 남아 있었는데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의 이곳에 오게 되어서 그리움이 밀려온다"고 했다. 박 대통령이 '35년여'라고 한 것으로 봐서 청와대를 떠나기 전인 1970년대 말까지 이곳을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아버지에 이어 청와대에 들어간 데다 휴가지까지 아버지의 추억이 깃든 곳을 찾아 감회가 각별하신 듯하다"고 했다.

그러나 휴가 첫날이었던 지난 29일 저녁, 청와대 출입 기자단이 상주하는 춘추관에서는 박 대통령의 휴가지가 어디냐는 문제를 놓고 소동이 벌어졌다. "박 대통령의 휴가 장소에 대한 모든 보도를 전면 제한하겠다"는 청와대 관계자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일부 기자 사이에 언쟁(言爭)이 일었던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는 대통령이 휴가를 떠날 때 '지방의 군 휴양시설' 같은 모호한 표현으로 장소를 숨기기는 했지만 하루 이틀 뒤면 대강 어디인지 알려지도록 내버려 뒀다. 하지만 이번 청와대는 "휴가 장소가 공개되면 경호가 어려워질 수 있으니 어디인지 추측할 수 있는 어떤 기사도 안 된다"는 입장을 완강히 고수했다. 결국 이 논리가 받아들여져 박 대통령의 휴가지는 청와대로 복귀할 때까지 일체의 보도를 금지하는 '엠바고'에 부쳐졌다. 이런 소동을 겪은 다음 날 박 대통령이 휴가지를 공개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이제 한국도 대통령의 휴가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북이 대치 중인 한반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청와대 경호실의 어려움은 짐작할 수 있지만 대통령의 휴가도 대중과의 소통 수단 중 하나인 만큼, 동선을 무조건 비밀에 부치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정상들의 여름휴가는 우리처럼 '깜깜이 일정'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의 휴가 일정과 장소를 백악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발표하는 경우가 많다. 미국 언론은 벌써 "오바마 대통령이 가족과 8월 10일 매사추세츠 마서스 비니어드로 여름휴가를 떠날 예정"이라고 보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