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이청준 선생, YS로 오인당해 경찰에 둘러싸이기도"

"총각 시절, 그가 결혼한다고 해 신부 집에 함을 지고 갔습니다. 결혼식에서 사회도 봤지요. 그래서 도통 실감이 안 납니다. 그는 가고 없는데 나는 살아서 이런 자리에…."

객석이 숙연해졌다. 소설가 이청준(李淸俊·1939~2008) 5주기를 하루 앞둔 30일 오전 경기도 파주출판도시 열화당 1층 강당, 김주연(72) 숙명여대 석좌교수가 좌중 앞에 섰다. 김 교수는 이청준과 서울대 독문과 동기로, 평생 지근거리에 살며 함께한 지기(知己)다.

그는 "무엇보다 이청준에게 미안하다"는 말로 추모사를 시작했다. "40여년 전 이 책이 나왔을 때,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독일 유학 중이었거든요. 5년 전 그가 갈 때도 나는 베를린에 있었지요. 큰아이가 전화해 줘서 비로소 알았어요. 어떻게 가장 중요한 순간엔 항상 곁에 없었는지…. 그 기억들이 나를 미안하게 합니다."

김 교수가 말한 '이 책'이란 1971년 일지사에서 간행된 이청준 첫 창작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당시 일지사 편집장으로 책 편집을 맡았던 이기웅(73) 열화당 대표는 5주기를 기념해 42년 전과 똑같은 세로쓰기 2단 조판으로 책을 복간했다. 이 대표는 "당시 나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작가가 인간사의 여러 국면을 날카롭게 짚어내는 데 감탄했다. 그를 찾아가 '이제까지의 당신 작품을 모두 묶읍시다'라고 말했다. 학습지 출판사였던 일지사가 문학·학술로 방향을 돌리면서 만든 첫 책, '최고의 작가'의 책을 만든 것을 아직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개회사를 맡은 문학평론가 김병익(75) 이청준기념사업회장은 "처음 책이 나온 1971년은 요즘과 달리 작가가 자기 책 한 권 낸다는 것이 무척 힘들고 영광스러운 시절이었다. 그리고 이번 복간본은 이청준 사후(死後)에 또 한 번 드리는 훈장인 셈이다. 40여년 전의 이기웅 선생과, 지금의 이기웅 선생에게 모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청준 5주기 추모 출판기념회'라는 이름으로 치러진 이날 행사는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그러나 행사 시작 전 김종규(74) 한국박물관협회 명예회장이 "생전 이청준 선생에게서 지방에 내려갔다가 YS(김영삼 대통령)로 오인받고 경찰에 둘러싸였다는 에피소드를 들었다"고 털어놓자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행사에는 이청준의 부인 남경자(71) 여사와 딸 은지(32)씨 등 5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