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대출 급증… 貸出잔액, 2년전의 3배 10조5000억

중소기업 회사원인 윤모(31)씨는 9월 결혼을 앞두고 전셋집을 구하려고 주말마다 서울 전 지역의 중개업소를 돌아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서울 구로와 강서구의 소형 아파트 전세를 알아봤지만, 전세금이 2억원을 훌쩍 넘어 엄두가 나지 않아 은평구의 소형 빌라로 눈길을 돌렸다. 하지만 방 2개짜리 빌라 전세금도 1억5000만원 안팎까지 올라 있었다.

윤씨는 "모은 돈이 없어 은행에 전세 대출을 받으려고 알아봤더니 내 연봉 3700만원으로는 1억원 이상은 대출을 못 해준다고 하더라"며 "돈을 못 구하면 반(半)지하 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최근 3~4년 동안 전세금이 지속적으로 오르면서 은행은 물론 캐피탈사·카드회사에 이르기까지 금융회사의 전세 대출금이 '폭증세'를 보이고 있다. 7월 말 현재 7개 시중은행(국민·우리·신한·하나·기업·외환·농협)의 전세 대출 잔액은 10조5000억원에 달한다. 2년 전인 2011년 7월 3조5000억원의 3배 수준으로 늘었다.

전세 대출이 급증한 것은 집값이 하락하면서 주택 수요자들이 전셋집으로 몰리고, 그 결과 전세금이 가파른 속도로 올랐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전국 아파트 전세금은 2년 전보다 평균 11.9%, 서울은 10.1% 상승했다. 서울 강서구·구로구 등 전세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했던 지역에서는 20% 이상 급등했다. 시중은행의 대출 담당자는 "최근 개인 고객들의 문의는 거의 모두 전세 대출과 관련된 것"이라며 "고객들이 전세금을 조금이라도 더 대출해 달라고 하지만, 은행 입장에선 담보도 없는 전세 대출을 무작정 늘려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전세 대출을 받을 때 발급되는 전세 보증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전세 대출은 기본적으로 담보물이 없는 신용대출의 일종이다. 이 때문에 주택금융공사와 같은 보증 전문 기관의 보증서가 필요하다. 지난 5월 기준으로 주택금융공사의 전세 보증액 잔액은 19조4898억원으로 2010년 말 9조5342억원에 비해 3년 만에 10조원이나 늘었다.

신용등급이나 소득이 낮아 은행권에서 전세금을 구하지 못한 서민들은 금리가 비싼 카드·캐피탈사 등 2금융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현대캐피탈의 상반기 전세 대출 취급액은 2389억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30% 증가했다. 현대 외에 삼성카드도 전세 대출을 판매 중이고, 롯데카드가 최근 전세 대출을 판매하기 위해 할부금융업 등록을 마쳤다.

전세 대출은 정확한 통계가 없지만 금융권 전체적으로 전세금 마련 용도의 가계 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통계청의 '가계금융조사'에서 가계 대출 900조원의 5.8%가 전·월세 보증금 마련을 위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봉급 생활자가 2년마다 수천만원씩 오르는 전세금을 월급으로만 감당하기는 어렵다"며 "서민뿐 아니라 중산층도 전세 자금을 보충하기 위해 대출을 끌어다 쓰는 일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