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만행에 '욱'하는 독일인 하르트氏

"아니, 그게 다가 아니에요. 바로 이 근방에 큰 형무소가 있었죠. 일제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을 여기다 가뒀어요. 철도 역시 관광보다, 자원 약탈과 대륙 침략 수단이었고…."

지난달 27일 강원도 철원 비무장지대(DMZ) 인근의 옛 철원 노동당사 건물 앞. 젊은 작가들의 미술 작품들을 전시하는 '리얼 DMZ 프로젝트' 관람 투어에서 한 전문가가 일본강점기 관광 붐과 금강산 교통 요지였던 철원의 발달에 관해 설명할 때였다. 한 중년 외국인이 앞으로 나서며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역사를 줄줄이 꿰며 역사를 영어로 설명했다. "철원 DMZ 지역은 임진강을 경계로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했던 곳이고, 궁예가 태봉국을 세웠던 곳이며, 남북이 분단되기 이전과 이후 반 토막 난 철원의 기억이 얽혀 공존하는 곳입니다."

한국에 13년째 살고 있는 독일인 예술가 알프레드 하르트(63). 아방가르드 재즈 음악가이자, 설치·영상미술가다.

◇"예술은 현실을 새롭게 바라보는 창"

지난 31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하르트를 다시 만났다. 철원에서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더니 그가 말했다. "외국인들도 많이 있는데, 일본 침략의 본질을 짚지 않으면 큰 실수가 될 것 같더라고요. 안 나설 수 있나요."

1층 라운지에 한쪽의 설치 작품 '더그아웃(Dugout)-불명확성의 섬'이 그의 이번 '리얼 DMZ 프로젝트' 참여작. 낙하산으로 만든 천막 아래 위장막이 최전선의 임시 막사처럼 늘어져 있고, 그가 직접 DMZ 일대를 다니며 촬영하고 수집한 45분짜리 동영상, 사진 슬라이드, 대북 전단, 10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르는 도자기 파편 등이 함께 설치돼 있다. 그는 예술가를 일종의 '현실 치료사'라고 했다. "분단의 고뇌(anxiety)에 사람들이 압도되지 않도록,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통해 일상의 균형을 잡으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그는 미술작가 외에도 재즈 밴드의 일원으로 전 세계를 돌며 공연하고 있다.

◇일본 음악가와 독도 논쟁 벌이기도

출발은 색소폰에 붙여져 있던 자개 장식이었다. 한국 전통공예의 아름다움에 눈뜬 그는 한국인 아내(화가 이순주)와 2001년 서울에 정착하면서 한국 사회·역사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책과 현장 답사로 익힌 그의 한국사 지식은 놀라울 정도.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일본의 만주 침략과 한반도 수탈, 가미카제(神風) 자살 특공대, 명성황후 살해범이 일본 패망 뒤에도 처벌 없이 살아남은 것까지 줄줄이 꿰고 있었다.

2006년 도쿄에서 일본 음악가와 역사 논쟁을 벌인 얘기를 들려줬다. "조선에 철도 놓고 경제 발전시킨 게 다 일본 식민통치 덕이라는 거예요. 히틀러가 아우토반을 건설했으니 나치도 좋은 정권인가요? '일본은 그렇게 한반도를 수탈하고도 아직 더 빼앗을 게 남았나. 이제 독도까지 건드리느냐'고 소리쳤죠. 아직도 서로 얼굴도 안 봐요."

하르트는 "아내와 시골길을 여행하다 작은 사찰을 찾아낼 때면 마치 동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라며 "한국과 한국인의 영혼에는 '조화(harmony)'가 있다. 자주 그 영혼과 일치되는 것을 느끼는 걸 보면 난 아마도 전생 언젠가 한국인이었을 것"이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