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의사 800만명 이끌 첫 아프리카 여성

"전 세계 곳곳에서 성폭력, 성범죄에 희생되는 여성이 여전히 많아요. 의사들이 나서서 성범죄 피해자들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잘 치유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합니다. 여자는 천성적으로 '돌봄'에 강하니 여의사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죠."

짙은 주홍빛의 아프리카 전통 의상을 입은 이 흑인 여성의 목소리는 카랑카랑했다. 아프리카 우간다 태생인 마거릿 뭉헤레라(Mungherera·57). 그는 오는 10월 취임해 앞으로 1년간 전 세계 102개국 의사 800여만명을 이끌게 될 세계의사협회 차기 회장이다. 1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여의사총회' 참석차 방한한 그를 만났다.

뭉헤레라 회장은 아프리카 여의사로는 최초로 세계의사협회 수장(首長)으로 선출됐다. 우간다 의사협회에서도 그는 최초의 여성 회장이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8년간 재임한 장수 회장이며, 2010년 다시 우간다 의사협회장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아프리카 여성들의 인권은 여전히 열악하지만, 그는 우간다 YWCA에서 30년 넘게 활동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갖게 됐다.

뭉헤레라 회장은 현재 우간다 캄팔라의 뮬라고(Mulago)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한다. 정신과 중에서도 그의 전공은 '법정신의학'이다. 범죄와 관련된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는 분야로, 피고인이 재판에 임할 정신적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범죄를 저지를 당시의 정신 상태 등을 평가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우간다 감옥에 있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정신 질환을 치료하고, 법정 자문을 한다.

"상대방이 나에게 해를 가한다는 망상이나 환상·환시 같은 정신 질환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면 범죄의 '본질적'인 의도가 자의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서 피고인의 형을 감경하거나 혹은 면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남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어 법정신의학을 선택했다"는 그는 우간다에서 최초로 법정신의학을 전공한 의사이다. 2002년 영국의 키일(Keele) 대학에서 법정신의학 분야를 연수했다.

뭉헤레라 회장의 이런 이력 덕분에 세계의사협회의 관심 분야도 수감자, 강간 피해 여성, 고문 희생자, 학대받은 어린이 등이 정신적으로 치유받고, 안전하게 치료받을 권리를 높이는 일까지로 확대되고 있다. 아프리카 태생, 그리고 여성이라는 점이 오히려 소외된 사람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다는 강점으로 작용해 그에게 세계의사협회 회장이라는 중책이 맡겨진 것이다.

뭉헤레라 회장은 "어느 나라든 정신 질환자나 성폭력 피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낙인이 심각하다"며 "이들이 제대로 치료받고 건강하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제도를 만드는 데 의사들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