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오, 그 정경화 맞아?

첫 곡 모차르트 소나타 27번 1악장을 마치고 호흡을 고르는데, 청중 하나가 큰 소리로 기침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5)는 객석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누군가 또 기침을 했다. 다시 미소. 세 번째 기침이 잇달아 터져도 웃은 뒤, 2악장에 들어갔다.

31일 평창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대관령국제음악제 독주회에서 만난 정경화는 한결 넉넉했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데굴데굴 구르거나 머리를 쥐어뜯었다는 그였다. 천하의 베를린 필과 협연해도 복도에서 씩씩거렸다는 '완벽주의자' 정경화에게서 볼 수 없었던 여유다.

선머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르고 나온 정경화는 이날 브람스 소나타1번과 포레 소나타 1번으로 프로그램을 채웠다. 표범처럼 몸을 잔뜩 웅크리고 사냥감을 금세 덮칠 것 같은 공격적 '정경화식 연주법'은 여전했다. 지난 27일 그리그 소나타 3번을 연주할 때와 마찬가지였다. 손가락으로 현을 뜯는 피치카토 때는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뽑는 것처럼 온몸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바이올린의 여제(女帝)'는 연주 내내 관객들을 쥐었다 풀었다 하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앙코르 때는 다시 넉넉해졌다. 청중들의 박수에 고개 숙여 답례하더니, "박수 치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요. 그러니까 빨리…" 하면서 슈베르트와 드뷔시의 소품 2개를 내처 달렸다.

정경화는 이날 한 곡, 아니 한 악장이 끝날 때마다 활짝 웃었다. 2005년에 당한 왼손 검지 부상에서 회복된 게 감사하다는 뜻이자, 2년 전 만난 피아노 반주자 케빈 케너(50)에 대한 만족 때문이었다. 연주 후 케너는 정경화의 양쪽 뺨에 키스했다. 정경화는 한 번 더 해달라는 제스처로 파트너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199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케너는 매달 정경화를 찾아와 호흡을 맞출 만큼, '여제'의 충직한 신도가 됐다.

정경화는 "크리스티안 짐머만(197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얘기를 해오는데…"라면서도 "케너 같은 완벽한 음악적 동반자를 만나게 돼 새로운 음악인생이 열린 것 같다"고 했다. 당분간은 케너와 "어떤 작품을 연주할지 고르느라 마음이 바쁘다"고 했다. 정경화는 3일 다시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로 올 대관령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무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