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주단은 원래 잘 다툰다? 항상 좋으면 사중주단 아니죠

지난달 개봉한 영화 '마지막 사중주'는 창단 25주년을 앞둔 현악사중주단이 베토벤 현악사중주 14번을 연습하면서 드러난 불화와 위기를 다룬 예술영화다. 25년간 화음을 맞춰온 음악가들이 파킨슨병에 걸린 동료 첼리스트의 은퇴를 계기 삼아 숨겨놓은 갈등을 한꺼번에 터뜨린다.

제2바이올린 주자는 제1바이올린의 그늘에 가려 있다는 불만과 비올라 주자인 아내까지 자신을 무시한다는 열등감 때문에 괴롭다. 리더인 제1바이올린 주자는 음악에만 신경 쓸 뿐 멤버들을 배려하지 않는다. 조직 내 역할 구분, 예술가의 콤플렉스, 인간관계를 둘러싼 묘사에 디테일이 살아있어 흥미진진하다.

실제 사중주단의 내막은 어떨까. 요즘 제일 잘나가는 '노부스 콰르텟(Novus Quartet)'에게 얼굴에 철판 깔고 물어봤다. 2007년 김재영(28)·김영욱(24·이상 바이올린), 문웅휘(25·첼로) 등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 결성했고, 2009년 이승원(23·비올라)이 합류한 '노부스 콰르텟'은 작년 세계적 권위의 독일 ARD 콩쿠르에서 현악사중주 2위에 오른 실력파 실내악단. 모두 독일 유학을 떠나 사중주 공부와 연주를 함께하며 전문 사중주단의 길을 걷고 있다.

―영화 '마지막 사중주'처럼 '노부스 콰르텟'도 같은 대학 출신들이다. 사중주단은 원래 사이가 안 좋은가.

"지금은 서로 적응했지만, 우리도 초기엔 다툼이 많았다. 유명한 사중주단들도 연주 여행을 다니면서 호텔의 같은 층 방을 쓰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김재영) "좋게 해석하면,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다 보니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아닐까.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도."(문웅휘)

―제1바이올린이 왜 늘 리더인가.

"음악을 리드하는 역할을 하니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우리 팀은 동등하다. 나이 차이가 있지만 눈치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어떻게 연주할 것인지는 모두가 토론을 통해 합의한다. 연습하다 다툼이 생기면 일단 헤어져서 감정을 가라앉힌다. 모두 예민하기 때문에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김재영)

―영화에선 제2바이올린 주자가 제1바이올린을 하겠다고 나서면서 분란이 생긴다.

"우리 팀은 2년 전부터 구분 없이 레퍼토리에 따라 번갈아 연주한다. 앙상블 만들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다."(김재영) "누가 제1바이올린을 하느냐에 따라 앙상블 색깔이 달라지기도 한다."(이승원)

―멤버 중 누군가 연주를 제대로 못 하면 어떻게 하는가.

"공연 중에 실수하면 당사자가 가장 괴롭다. 그래서 꼬집어 지적하지 않는다. 이 친구(이승원)가 몇 번 얘기하길래 못 하게 했다. 연습 때는 물론 자연스레 얘기한다."(김재영)

―각 악기는 어떤 역할을 맡는가.

"제1바이올린은 음악을 리드하고, 제2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멜로디를 떠받치고 속을 채우는 '내성(內聲)'을 만들고 밸런스를 조절한다. '내성'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이냐에 따라 앙상블의 실력이 결정된다."(이승원) "제2바이올린은 소리의 중심이다.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융합시키는 역할을 한다."(김영욱) "첼로는 기둥이다. 4년 전엔 대들보라고 답했는데, 모두 똑같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문웅휘)

노부스 콰르텟은 8일 바흐가 남긴 최후의 걸작 '푸가의 기법' 연주를 앞두고 있다. 국내에서 현악사중주로 선보이는 첫 '푸가의 기법' 전곡 연주다.


▷노부스 콰르텟 '푸가의 기법', 8일 오후 8시 금호아트홀, (02)6303-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