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대출 손실(상반기 대손충당금) 5조4000억원… 순익의 2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직전이었던 2008년 8월. 국민은행은 당시 강정원 행장의 주도로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의 지분 41.9%를 9392억원에 인수를 했다. 당시만 해도 국민은행의 1년 순이익만 2조7000억원(2007년) 수준으로 자금이 넘쳐났다. 그러나 인수 계약을 맺은 직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BCC의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시쳇말로 하면 '상투'를 잡은 꼴이 됐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2010년 어윤대 KB금융 회장이 취임하면서 BCC를 살려보겠다며 경영진까지 파견하며 정성을 쏟아 부었다. 그러나 결과는 주가 하락으로 국민은행은 4000억원가량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은행은 올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BCC의 주식 손실과 관련해 1200억원을 대손충당금으로 적립했다.

금융권에선 "국민은행 스스로 '실패한 투자'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올 2분기 국민은행의 당기순이익은 488억원. 1분기와 비교해 무려 83.5%나 줄어들었다. A은행의 자금 담당 임원은 "국민은행 입장에선 2번이나 리스크 관리에 실패한 것"이라며 "차라리 은행 실적이 좋았던 2010년에 부실채권으로 털어버렸더라면 이번처럼 충격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반기 은행 대손 충당금 5조4000억원, 순익의 2배

국내 은행들이 2분기 실적을 발표하면서 참담한 실적을 내놓았다. 국내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1000억원)에 비해 48%나 줄어들었다. 저금리의 영향으로 은행이 이자로 벌어들인 돈이 8조7000억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9000억원이나 줄었다.

여기에 기업 구조조정의 여파로 부실채권이 늘어나면서 은행이 쌓아야 하는 대손충당금도 늘고 있다. 대손충당금은 대출을 받아간 기업이나 개인이 자금난 등으로 부실화되면 은행이 떼일 것을 대비해 쌓아두는 돈이다. 충당금이 늘어나면 은행의 순익도 그만큼 줄어든다.

국내 은행들은 대손충당금으로 1·2분기에 각각 2조7000억원씩 5조4000억원을 적립했다. 상반기 은행 순이익(2조8000억원)의 거의 두배가량을 충당금으로 쌓은 셈이다.

◇호황기 리스크 관리 실패가 불경기에 치명타로

은행권은 이자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똑같은 처지이지만, 충당금이 많으냐 적으냐에 따라 은행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4대 금융지주사 중에선 우리금융이 쌍용건설과 STX그룹에 빌려준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올 상반기에만 1조1234억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그 결과 우리금융지주의 상반기 수익은 3800억원으로 지난해(8131억원)에 비해 63%나 감소했다. 우리금융은 "공적자금을 받은 금융기관이어서 정부 방침에 따라 기업 대출에 적극 나서다 보니 다른 은행에 비해 기업 부실 채권이 많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다른 은행들의 평가는 다르다. 대형 은행의 리스크 담당 부행장은 "우리은행의 부실채권은 2000년대 중반, 후반 건설업과 조선업이 호황이던 시절에 미래의 리스크를 제대로 못 보고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대규모 대출을 해 준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국내 은행의 부실한 리스크 관리가 수십 년째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은행들이 한보·기아차·해태 등 대기업에 집중적으로 대출을 했다가 기업의 연쇄부도와 함께 국가적인 위기상황이 벌어졌다. 2003년에는 카드 대란에서 가계부채 위기, 2007년에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서 대규모 부실채권이 발생했다. 당장 수익이 나는 곳에 대출을 쏟아붓는 후진적 영업 관행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보험·증권·카드업계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

제2금융(보험ㆍ증권ㆍ카드ㆍ저축은행 등)도 실적 부진의 늪에 빠졌다. 특히 증권사의 경우, 리스크 관리 실패로 큰 손실을 보았다. 지난달 26일 증권사 중에서 가장 먼저 올해 2분기(4~6월) 실적을 공개한 HMC투자증권은 영업이익이 1억2000만원에 불과했다. 전 분기 대비 99.1% 줄어든 것이다. 이달 하순 실적 발표 예정인 다른 증권사들의 사정도 크게 낫지 않다. 5일 현재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가 집계한 주요 증권사들의 2분기 실적 전망치는 전 분기보다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KDB대우증권의 영업이익은 44.5%, 삼성증권은 38.2%, 우리투자증권은 23.8%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사들의 이익이 급감한 이유는 지난 5월 말 미국이 양적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를 축소할 수 있다고 시사하면서 2분기에 시장금리는 급등하고 보유한 채권의 가격은 급락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 매매가 줄면서 수수료 수입이 줄자 회사 자금으로 채권을 매매해 수익을 벌충해 왔는데 예상과 달리 채권 가격이 급락하자 평가 손실을 크게 본 것이다.

9개 주요 보험사도 2분기 순익이 8883억원으로 작년 2분기(1조607억원)에 비해 16%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보험업계 수익 감소의 주범은 저(低)금리로 인한 운용 수익 감소이지만,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못한 측면도 있다. 보험업계는 안전하다는 이유로 채권에 거의 모든 투자를 집중하고 있는데,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채권가격은 하락) 보유 자산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