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남겨진 위안부할머니 삶 담은 안세홍 사진집 '겹겹'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둥닝(東寧)의 오지 마을 양로원에서 만난 이수단 할머니는 신문지에 담뱃잎을 말아 피운다. 연기 속에 시름이 한가득이다. 평안남도 숙천의 열아홉 살 처녀는 1940년 선금 480원을 받고 만주 벌판으로 왔다. 허드렛일을 하는 줄만 알았는데 일본군 위안소였고 '히도리'로 불렸다. 전쟁은 끝났지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족 남자와 결혼해 살았다. 성병 때문인지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카메라 앞에서 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조선말 잊어버린 게 가장 가슴 아파."

경남 하동군 화개면이 고향인 배삼엽 할머니는 열세 살, 월경도 하기 전에 네이멍구(內蒙古) 바오터우(包頭)의 일본군 위안소로 실려왔다. '5번 방의 게이코'가 됐다. 일주일 동안 거기서 피가 났다. 얼마나 고달팠던지 같이 있던 언니 둘은 아편을 먹고 자살했다. 북한 국적을 가지고 살다 1999년 한국 방문을 위해 국적을 중국으로 옮겨 고향에 왔더니 오래전에 사망신고가 돼 있었다. 베이징에 사는 할머니는 한국말을 잊지 않으려고 '눈물 젖은 두만강' '목포의 눈물'을 부른다.

안세홍 사진 에세이 '겹겹'(서해문집)은 중국에 남겨진 일본군위안부의 삶을 포착한다. 그들은 이제 80~90대 할머니가 됐다. 기억을 캐물으면 주름 깊은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며 한숨으로 답한다. 그만큼 상처는 생생하다. 끌려갔고 감금됐으며 성폭행이 반복됐고 끝내 버려졌다. 저자는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논란 속에 사진전 '겹겹 프로젝트'를 열었고 이번 책은 일본어판으로도 출간됐다.

"고향(충북 진천)을 잊지 않으려고 날마다 지도를 본다"는 박대임 할머니 등 8명의 '남겨진 삶'이 흑백사진 90여점에 찍혀 있다. 헤이룽장·베이징·류산·상하이·우한 등 전쟁의 최전선이었던 곳에서 할머니들의 자취를 찾았다. 저자는 "그들은 위안소에서 일본말과 일본 이름을 써야 했고 살아남기 위해 또 중국말을 배워야 했다"면서 "할머니들은 일본이 지금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모르고, 그저 죽어 고향 땅에 묻히고 싶을 뿐"이라고 썼다. 뿌리 뽑힌 생의 마지막 사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