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만 있던 식당, 그가 뜨니 별이 떴다

유서 깊은 식당은 안주하기 십상이다. 더 나은 요리나 새로운 맛을 위해 애쓰기보다, 명성에 의존해 장사하면 평균은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정작 현지인은 외면하는 '관광식당'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하지만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에 있는 '르두아앵(Ledoyen)'은 여전히 세계적 레스토랑 가이드 미슐랭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셋을 받아 유지하고 있다.

7개월에 걸친 개·보수를 마친 서울 신라호텔이 재개관 기념행사(7~9일)를 위해 초청한 르두아앵 총주방장 크리스토프 르스퀘르(Le Squer·50)를 5일 만나 이 식당이 2세기 넘도록 파리 최고의 레스토랑으로 인정받는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프랑스 요리 전통을 고수하되 현시대에 맞게 끊임없이 진화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도 단골

르두아앵은 프랑스대혁명(1789) 10년 전인 1779년 '오 도팽(Au Dauphin)'이라는 작은 여관 겸 식당으로 문 열었다. 1791년 피에르 미셸 두아앵(Doyen)이 인수해 자신의 이름을 딴 간판을 걸면서 정식 레스토랑으로 새출발한다. 르스퀘르 총주방장은 "귀족 등 당시 상류층이 모이던 일종의 사교클럽이었다"면서 "프랑스혁명 땐 단두대 처형을 구경한 사람들이 모이곤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공포정치의 대명사인 로베스피에르도 단두대에서 죽기 이틀 전인 1794년 7월 26일 이곳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다. 나폴레옹 등 정치인은 물론 모네, 드가, 세잔, 플로베르, 모파상, 콕토 등 문화계 명사들이 단골로 드나들었다.

◇어부를 꿈꿨던 셰프

르스퀘르는 프랑스 서부 해안 브르타뉴지방 출신. 그는 "어려서부터 생선 등 해산물을 좋아해 어부가 되려 했다"고 했다. 12세 되던 해 처음으로 배 타고 고기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 그런데 거기서 요리에 매료됐다. "어부들에겐 식사가 제일 중요한 시간입니다. 음식과 정을 나누는 즐겁고 따뜻한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요리사가 되기 위해 14세에 호텔조리학교에 입학했다. 그 후의 이력은 '전설' 혹은 '레스토랑계의 미다스 손'이다. 타이유방(Taillevent), 리츠칼튼호텔 레스파동(L'Espadon) 등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경력을 쌓은 르스퀘르는 1995년 인터컨티넨탈호텔 로페라(L'Opera) 총주방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미슐랭 1스타를, 그리고 2년 뒤인 1998년 2스타를 획득한다.

◇"전통? 끊임없는 진화뿐!"

1999년 그가 총주방장을 맡은 후, '역사는 깊지만 음식은 그저 괜찮다'는 평가에 미슐랭에서 별 한 개도 못 받던 르두아앵의 역사에 '신화'가 추가된다. 2000년 별 하나를, 2년 뒤인 2002년 요리사 최고의 영예인 별 셋을 얻는다.

르스퀘르가 지휘하는 르두아앵의 음식은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접시에 담긴 모양새는 최첨단·초현대적이지만, 맛을 보면 프랑스 요리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르스퀘르는 "프랑스 요리는 항상 변화하며 진화한다"며 패션에 비교했다. "샤넬의 슈트는 겉으로 보면 코코 샤넬이 디자인한 당시와 같아 보입니다. 하지만 컷이라든가 피트가 완전히 달라졌지요.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의 입맛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에 맞춰 요리도 항상 움직여야 합니다. 전 세계 모든 요리 기술을 받아들이되 프랑스 요리만의 맛을 받아들여 진화하는 것이 전통의 보존이자 보호입니다."

르스퀘르는 "프랑스 요리는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遺産)"이라면서도 다른 나라의 맛과 요리 기술에 개방적이고 유연하다. 일본과 대만을 자주 찾아 요리의 영감을 얻는다는 그에게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 그는 "아직 얼마 먹어보지 못했지만, 한국 음식은 풍미가 깊고 풍성한 듯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