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원 반도체 시대 연 삼성… 메모리 1位 굳히기

삼성전자가 이번에 선보인 반도체의 핵심은 셀(저장매체)을 평면에 나란히 배열하는 '2차원 방식'을 넘어서서, 셀을 수직으로 쌓아 올린 '3차원(3D) 메모리'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들어가는 셀의 수를 늘려 집적도를 쉽게 높일 수 있다. 같은 넓이의 땅에 최대한 많은 사람을 수용하는 주택 단지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셀을 수평으로 배열하는 방식이 단층 주택을 짓는 것이라면, 수직 적층(積層)하는 방식은 고층 아파트를 세우는 것에 비유된다.

◇기존 반도체 제작방식 한계 부딪혀

삼성전자가 새로운 방식을 개발한 것은 기존의 반도체 집적 기술이 한계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단층 주택을 지어서 되도록 많은 사람을 수용하려면 집 사이의 간격을 최대한 좁혀야 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반도체 제작 기술에서는 셀 사이의 간격을 얼마나 좁힐 수 있는지가 핵심이었다. 이를 '미세화'라고 한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그 간격은 3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에서 20나노미터로, 다시 10나노미터로 좁아졌다.

문제는 간격이 10나노미터까지 좁아지자 인접한 셀들 사이에서 간섭 현상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그래서 반도체 업계에서는 셀을 수평으로 배열하고 사이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방식의 집적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셀 간격이 10나노미터보다 좁은 반도체는 만들기가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셀을 수직으로 쌓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집적도를 높일 수 있다.

이번에 만든 반도체는 집적도가 기존의 10나노급 반도체와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현재로선 집적도 자체는 비슷하지만, 집적도를 더 이상 올리기 어려운 기존 10나노급과 달리 수직 적층식은 앞으로 집적도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며 "기존 방식에서 셀 사이 간격을 줄이려면 대규모 설비투자를 새로 해야 하는 반면, 수직 방식은 기존 설비를 일부만 교체하고 활용할 수 있어 비용 면에서도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게임의 법칙'을 바꾼 기술

이번에 삼성전자가 양산하는 반도체는 셀을 24층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용량은 지금까지 나온 최대 용량 제품과 같은 128Gb(기가비트)로, 5GB(기가바이트)짜리 DVD 영화 3편 정도를 저장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5년 정도가 지나면 셀을 쌓아올리는 층수를 더 늘려 1Tb(테라비트)짜리 낸드플래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Tb짜리 낸드플래시 메모리 하나로 128GB의 저장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 DVD 영화 25편 이상이 들어가는 용량이다. 스마트폰 같은 모바일 기기에는 여러 개의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들어간다. '3D 메모리'를 사용하면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기기의 저장 용량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3D 메모리'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 경쟁에서 '게임의 법칙'을 바꿔버린 것이다. 반도체 회사들은 셀 사이 간격을 좁히는 미세화 경쟁에 몰두하고 있었다. 더구나 현재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업체들은 10나노급 반도체보다는 20나노급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상황이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으로 10나노급 반도체 비중은 삼성전자가 55.8%, 일본 도시바가 3.5%, 한국 SK하이닉스는 1.3%다. 미세화 수준을 높여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기존 경쟁 방식을 바꿔버릴 새로운 기술을 선보인 것이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3D 반도체 양산은커녕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회사조차 없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미세화 경쟁에 매달리기보다는 새 기술로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미세화 기술 경쟁은 이제 사실상 끝났다고 본다"며 "앞으로는 셀 적층 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가 반도체 기술 경쟁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