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수상태 코끼리' 살리러… 족집게 경제학자가 간다

인도의 세계 석학인 라구람 라잔(Rajan·50)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인도 중앙은행 총재에 지명됐다. IIT(인도공과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최연소 수석 이코노미스트였다. 지난해 8월부터는 인도 재무부의 수석 경제보좌관을 맡고 있었다.

라잔 신임 총재는 '글로벌 경제의 엔진' '거대한 코끼리'라는 찬사에서 '병든 코끼리'로 전락하고 있는 인도 경제의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인도는 지금 무뎌진 경제성장률, 만성적 대규모 재정 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고질적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것들이 가져온 루피화 약세라는 다섯 가지 중병을 앓고 있다. 특히 최근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신흥국으로 천문학적으로 유입된 자금들이 미국의 양적 완화(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것) 축소 움직임과 맞물려 대거 빠져나가면서 달러 대비 루피화의 가치가 크게 폭락했다.

6일(현지 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인도 정부가 내부 인사를 발탁하는 전통을 뒤집고 라잔을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 총재에 임명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중앙은행 총재는 그동안 경제 관료나 중앙은행 출신의 전유물이었다. 그런데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라잔을 중앙은행 총재에 임명한 것은 그만큼 경제 상황이 절박하다는 뜻이다.

내달 4일 임기가 시작되는 라잔 신임 총재의 급선무는 지난 2년간 달러 대비 40% 가까이 폭락한 루피화의 통화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동시에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경제성장률과 GDP의 4.8%까지 치솟은 높은 경상수지 적자 그리고 10%대에 육박하는 높은 물가상승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난제 중의 난제다. 특히 최근엔 월마트, 아르셀로 미탈, 포스코 등 글로벌 기업이 잇따라 인도 탈출을 선언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계는 일단 "라잔 총재는 엄청난 지식과 국제적 경험이 있는 인물"(바클레이스 라훌 바조리아 이코노미스트), "그는 자본시장에서 대단한 명성을 가진 인물"(JP모건 아지즈 수석 이코노미스트) 등의 기대감을 표시했다. 시장도 라잔 신임 총재의 임명 소식에 반색했다. 이날 수출 업체들의 루피화 매도로 미 달러화 대비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던 루피화는 라잔의 임명 소식에 낙폭을 줄였다.

글로벌 금융계가 그를 주목하는 것은 화려한 이력 때문이다.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는 2011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디어를 가진 경제학자'로 그를 꼽았다. 하버드대 교수인 케네스 로고프, 뉴욕대 교수 누리엘 루비니가 뒤를 이었다. 특히 2005년 당시 '글로벌 경제의 지존'으로 군림하던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마지막으로 주재한 잭슨 홀 회의에서 라잔은 "현재의 금융 발전이 대규모 금융 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연설했다. 그린스펀 면전에서 그의 통화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연설을 마친 그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2009년 1월 2일 미국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은 "정확하게 2년 후 라잔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라잔 신임 총재는 2011년 본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바닷물과 민물이 섞인 실용주의적(pragmatic) 이코노미스트"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인도의 정실 인사와 부정부패를 비판하고 규제 완화를 옹호하는 리버럴리스트(자유주의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인도가 너무나 더딘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으로 성장률을 연간 몇 % 손해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