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顚(전) 101起(기) "여성들이여,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서라"

"7전 8기로는 부족해요. 100전 101기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내 대형 금융회사에서 유일한 여성 CEO(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는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사장에게 성공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몇 번을 넘어지더라도 툭툭 털어 다시 일어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손 사장은 저금리로 보험사 경영이 어렵지 않으냐는 질문엔 '기본에 충실하면 살 길이 열린다'는 답을 내놨다. 손 사장은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영어영문과(70학번)를 나와 여러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고 지난 2011년 CEO가 됐다. 빨간색 재킷을 입은 자신만만한 표정의 그녀는 지난해가 환갑이었지만, 7cm 하이힐을 신고 있었다. 손 사장은 "이래야 정돈된 느낌이 든다"고 했다.

―금융권 첫 여성 CEO다. 비결은.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다 1996년 푸르덴셜생명보험 인사부장으로 스카우트되고 1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2003년에 부사장이 됐고, 2011년에 사장이 됐다. 현재 금융권에 여성 CEO는 나 하나다. 이게 그냥 되지는 않는다. 예전에 한 저녁 자리에서 남성 참석자들이 '대장금 하는 날이니 일찍 들어가서 TV 봐야겠다'고 했는데, 나는 남자들이 보는 무협 드라마라고 짐작하고 대장의 칼을 뜻하는 대장검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저금리라 돈을 굴릴 곳이 없어 보험업계가 어렵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 금융은 서비스업이다. 새로운 보험 상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고객에 대한 서비스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리는 1879명의 라이프플래너(보험설계사를 부르는 말)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 근무해 전문성과 책임감을 갖춘 분이 523명이나 된다. 보험 내용 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가입시키는 불완전 판매 비율이 0.07%로 생명보험업계에서 가장 낮다. 단연 1위다. 2위가 0.26%로 3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고객들이 신뢰할 수 있는 보험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또 그동안은 조기 사망의 위험에 대비한 종신보험에 주력했지만, 은퇴 이후 노후 보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연금보험 등에 힘을 쏟을 생각이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난다. 어떤 점을 주문하고 싶나.

"과거에는 여성 직원을 뽑을 때 '며느리 삼고 싶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 같다. 참하다는 표현이 있지 않나. 지금은 달라졌다. 도전적이어야 하고, 리더십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 실패를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갖고 있어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꿈을 크게 갖지 않는 것 같다. 실패를 두려워하고 안주하려고 한다. 내 좌우명은 '실패는 해도 후회하고 싶지는 않다'다. 실패를 하더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가 남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들은 일과 가정 사이에 끼여서 어려움을 겪는다.

"현실적으로 첫 아이를 낳을 때 직장 여성들은 퇴직을 고민하게 되고, 위기를 맞는다. 나도 그랬다. 일하는 여성들이 일에 50%, 가정에 50% 하는 식으로는 접근해서는 두 가지 모두 실패하기 쉽다. 일에도 100%, 가정에도 100%를 쏟아붓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아이 학교에 가야 할 일이 생겨서 일할 시간이 모자라면 시간을 찾아내서 일했다."

-국내 금융회사에서 일했어도 CEO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

"어려웠을 것 같다. 아직은 국내 기업들은 능력과 무관하게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의 장벽이 높다. 또 한 가지, 솔직히 남성들 틈에서 홍일점(紅一點) 프리미엄을 누렸다. 상사들이 내 이름을 기억하고, 기회를 줬다. 요즘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서 여성 직장인들은 이런 것을 누리기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