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히 계획된 '테러'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보였다. 총제작비 60억원을 들인 신인 감독의 '더 테러 라이브'가 봉준호 감독의 430억원짜리 '설국열차'와 같은 날(7월 31일)에 개봉하겠다는 건 딱 그런 형세였다. 게다가 아무리 '대세 배우' 하정우라 해도, 배우 한 명으로는 틸다 스윈턴, 크리스 에번스, 송강호 등의 무게감에 맞서기에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계란인 줄 알았던 '더 테러 라이브'는 단단한 차돌이었다. 11일 현재 '설국열차'와 '더 테러 라이브'는 각각 관객 644만명과 383만명을 동원했다. 비록 개봉 이래 줄곧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전혀 밀리는 기세가 아니다. '더 테러 라이브'가 관객 300만명을 동원할 무렵 김병우(33) 감독을 만났다.

―이 정도 성적을 예상했나.

"손익분기점(약 200만명)만 넘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대중이 볼 것이라곤 예상하지 않았다. 상업영화의 틀을 벗어난 구석이 좀 있으니까."

―예를 들자면 한 공간 안에서만 영화가 진행되는 것?

"테러나 협박 같은 상황은 이미 다른 영화에서도 많이 다뤘다. 굳이 내가 그걸 또 할 필요는 없었다. 인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면서 세밀한 감정변화를 보여주는 방법으로 현장감과 긴박감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것만 성공해도 영화가 충분히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산이 더 많았다면 달라졌을까.

"일단, 세트 밖으로 나갈지 말지를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돈이 더 있었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오히려 더 써봤자 손익분기점만 높아졌을 것이다."

―결말이 여느 대중영화의 그것과는 다르다. 대부분 보기 편한 걸 선호하는데, 불편한 결말을 선택했다.

"결말 역시 다른 걸 고민해본 적 없다. 이 영화 흐름과 색깔,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극의 속도를 떨어뜨린 뒤 모두 화해시킬 것인지, 계속 밀어붙여서 정면 충돌시킬 것인지를 택해야 했다. 당연히 후자다. 이 영화의 힘은 즉발(�發)이니까. 이 영화에서 주인공과 다른 이들이 구출돼서 서로 부둥켜안는 것으로 끝내는 건 생각만 해도 이상하지 않나?"

―하정우의 출연 분량과 비중이 압도적이다. 신인 감독과 베테랑 배우의 만남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앵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진 배우를 여럿 떠올렸다. 하지만 앵커 이미지에만 치중한다면 너무 평면적이고 단조로울 것 같았다. 오히려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배우가 나았다. 경험이 많은 배우와 일해서 쉽고 편했다. 게다가 하정우씨도 막 영화 연출을 마치고 이 영화에 출연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나를 많이 이해해줬다."

인터뷰 도중 그는 촬영 중 사용한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맨 앞장에는 주인공인 윤영화의 감정선을 그린 그래프가 붙어있었다. 전체 영화는 사건별로 22개의 챕터로 나뉘어 있었고, 감정의 정도는 1~10까지로 기록됐다. 시나리오에는 '빠르게' '2~3초 뒤'와 같은 메모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촬영팀에 따로 나눠준 촬영 매뉴얼도 있다고 한다. 그는 "영화가 윤영화 시점으로만 진행된다. 관객들의 감정 변화를 그의 감정 변화에 맞추기 위해서 이런 준비가 필요했다"고 했다.

김 감독은 "졸업(한양대 연극영화과) 이후 4년간 준비했다. 시나리오를 17번 정도 고쳐 쓰면서 매번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아르바이트도 한번 안 하고서 여기에만 매달렸다"고 말했다.

―이렇게 준비를 많이 한 건 성격 탓인가.

"성격과 시간, 반반이다. 꼼꼼한 편이기도 하지만, 4년간의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게다가 한 달 반, 26회차 안에 다 찍어야 했기 때문에 촬영을 하면서 찾아나가거나 여러 가지를 시도해볼 수 없었다. 일정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철저히 준비해놔야 했다. 다행히 거의 모든 게 계획한 데서 벗어나지 않았다."

―졸업 후 4년이면 불안할 법도 했겠다.

"한 번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 시나리오 처음 떠올릴 때의 콘셉트나 아이디어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무조건 내 상업영화 데뷔작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많은 관객이 좋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의의는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또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는 "지난 몇 년간 이 영화만 생각했는데, 다른 아이디어가 있겠느냐"며 "멜로나 코미디는 천성적으로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영화를 꼭 닮은, 그 물기 없이 건조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 천성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테러 라이브

방송국에서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윤영화(하정우) 앵커에게 청취자가 전화를 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겠다”고 한다. 전화가 끊긴 직후 마포대교에서 폭탄이 터지고 테러범은 윤 앵커와의 전화 통화 중계 조건으로 21억여원과 함께 마포대교 보수공사를 하다가 한강에 빠져 죽은 일용직 노동자 세 명에 대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한다. 엔딩크레디트를 제외한 영화 상영시간은 94분. 김병우 감독은 “관객의 몰입과 집중이 필요한 영화인데, 여기서 10분만 더 길었어도 다들 피로해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