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브르 텅 빈다며 엄살떨더군요"

"프랑스는 어떤 경우에도 외국 문화재를 반환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전례를 남기면 루브르 박물관이 텅 비게 된다고요. 우리는 프랑스에 내줄 것이 없었지만 포기할 수도 없었죠."

유복렬(50) 미국 애틀랜타 부총영사가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 과정을 다룬 책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를 펴냈다. 그는 1997년 프랑스 전문가로 외교부에 들어왔다. 외무고시 출신은 아니지만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프랑스어 통역도 맡았고 주프랑스대사관에서 두 차례 근무하며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의 실무를 담당했다. 유 부총영사는 13일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20년 가까운 협상 과정에서 15년간 협상의 실무를 맡았다"며 "마치 운명 같았다"고 말했다.

병인양요(1866년) 때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문제는 20년 가까이 한국과 프랑스의 최대 외교 현안이었다. 1993년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반환을 약속했지만, 프랑스 국내법과 문화계의 반발로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1991~1998년)→민간(1999~2003년)→정부(2004~2011년)로 주체를 바꾼 것도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1999년 첫 민간 협상 때는 한국 대표인 한상진 당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과 프랑스 측 자크 살루아 감사원 최고위원이 병인양요의 성격을 놓고 양쪽이 사과하라며 언쟁을 벌였다. 유 부총영사는 "나중에는 프랑스 민간협상대표가 테이블을 주먹으로 치고 협상장 문을 박차고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자크 시라크 당시 프랑스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외규장각 도서 문제가 지긋지긋해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한국 문화재와의 맞교환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프랑스를 다시 협상장으로 데려 나온 것은 2009년 말 부임한 박흥신 주프랑스대사였다. 박 대사는 2010년 협상에서 "대가를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의궤를 돌려주고 대신 한국민들의 영원한 사의(謝意)를 선물로 받으시라"며 프랑스를 설득했다. 프랑스가 한국에 이어 G20(주요 20개국) 정상 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는 점을 들며 한국과 프랑스가 계속 협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전략이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였고 2011년 외규장각 도서는 대여 형식으로 14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유 부총영사는 "20년 가까이 협상을 하는 동안 프랑스의 법도, 한국의 입장도 달라진 게 없었다"며 "강해진 우리의 국력이 협상 타결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유 부총영사는 외규장각 도서 반환의 위인으로 프랑스에서 외규장각 도서의 실체를 처음으로 찾은 고(故) 박병선 박사를, 은인으로 한국을 지지했던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 뱅상 베르제 파리 제7대학 총장을 꼽았다.

동시에 협상의 최대 적(敵)이었던 재클린 상송 당시 프랑스국립도서관 사무장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상송 사무장은 외규장각 도서의 한국 반환에 가장 극렬히 반대했던 인물. 같이 기념사진 찍는 것조차 거부했던 상송은 한국으로 떠날 책의 포장을 일일이 지휘했다고 한다. 유 부총영사는 "이런 철두철미한 사람이야말로 프랑스의 힘이고 자존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