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랏빛 장관을 지키는 남자

라벤더(Laven der)는 매년 6~9월이면 보랏빛 꽃을 안개처럼 피우는 식물이다. 불면과 스트레스 치료에 효과적인 데다 향기가 강렬해 화장품 원료로 널리 쓰인다. 그런 라벤더가 최근 멸종 위기를 맞았다. 각종 벌레로 인한 질병이 번지면서 남프랑스 곳곳에서 자라던 라벤더가 이젠 일부 산악지대와 농장에만 남을 정도로 크게 줄어든 것. 프랑스 오뜨 프로방스 농업조합이 "2~3년마다 전체 라벤더 수확이 50%씩 줄어들고 있다"고 했을 정도다. 1976년부터 프로방스 천연 재료로 화장품을 만들어 온 회사 록시땅(L'occitane)의 올리비에 보상(Baussan·사진) 회장이 '라벤더 프로젝트'를 지난 6월부터 시작했다. 라벤더 연구센터를 짓고 보호기금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보상 회장을 서면으로 만났다.

―'라벤더 프로젝트'란 무엇인가?

"디지털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라벤더의 멸종 위기를 알리고, 지역 연구센터와 손잡고 라벤더 보호 연구를 시작하는 운동이다. 라벤더 내성을 키워줄 천연 약재나 차단막을 개발할 뿐 아니라 누구나 찾아와 라벤더 향을 맡고 감촉을 느낄 수 있는 개방 농장을 열고 각종 캠페인도 벌일 생각이다."

―식물 하나가 멸종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게 있을까.

"자연으로부터 받은 건 자연에 다시 돌려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산업도 지속할 수 없다. 지난 40여년 동안 우리는 라벤더에 많은 빚을 졌다. 농부들은 라벤더를 수확해 돈을 벌었고, 수많은 화장품 회사가 라벤더를 활용한 제품을 팔며 이윤을 늘려왔다. 이젠 그 빚을 갚을 차례다."

―오래전부터 '지속 가능한 생산'을 강조해왔다.

"지역 산업과 자연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꾸준히 작물을 거두고 생산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가령 우리는 라벤더 수확을 위해 2013년부터 오뜨 프로방스 지역 농업협동조합과 5년 동안 작물을 독점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파트너가 마음에 안 든다고 금세 바꾸거나 여기저기서 마구 작물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5년 동안 꾸준히 함께 일하겠다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방식을 택하나.

"사람과의 약속인 동시에 자연과의 관계 맺기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시다. 라벤더와 공생하기를 원한다면 도중에 힘들고 이윤이 나지 않더라도 관두지 않겠다는 맹세이기도 하다. 1950년대 프로방스엔 한파가 심하다는 이유로 아몬드 나무를 다 없애고 포도 나무를 심는 농부가 많았다. 하지만 그렇게 마구잡이로 심은 나무에서 얻은 와인은 질이 좋지 않았고, 결국 포도 농사는 망했다. 최근엔 다시 포도 대신 아몬드 나무를 전통 재배 방식으로 심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당장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돌아서면 그 피해는 우리 모두에게 온다."

―'라벤더 프로젝트'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사진전도 연다고 들었다.

"아를과 마노스크 지역 일대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고, 페이스북과 웹사이트를 통해 영상 전시도 한다. 한국 비디오 아티스트가 찍은 영상도 있다. 난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자연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설득해왔다. 그건 일종의 시적(詩的) 투쟁이었다. 시적 투쟁은 서서히 사람을 움직인다. 오래 걸린다 해도 결국 이긴다는 걸 난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