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뜀박질, 이것은 축제다

예능 작가 전수진(33)씨는 요즘 밤에 더 바쁘다. 클럽에 가서 춤추거나 친구들과 술 마시느라 그런 게 아니다. 대신 그는 '밤 뜀박질'을 시작했다. 혼자 뛰는 것도 아니다.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었다. 일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SNS로 번개 공지를 돌린다. '오늘은 여의도 IFC몰에서 출발. 여기서 한강까지! 9시에 만나요.' 금세 10여명이 모인다. 간단하게 눈인사를 나누고 바로 달린다. 채씨는 "뛴다는 건 사실 외로운 운동이지만, 함께 달리다 보면 외롭다는 생각을 할 틈이 없다. 내게 달리기란 운동이라기보단 놀이"라고 했다.

'나이트 러닝족(族)'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잠조차 오지 않는 무더운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한강 일대와 양재천, 도심 곳곳엔 '달밤에 뜀박질'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을 겨냥한 각종 달리기 대회도 수시로 열린다. '밤 뜀박질'이 젊은이를 쉽게 불러 모을 수 있는 일종의 '축제'가 된 것이다.

◇도시 남녀, 밤에 뛴다

인터넷 라디오 방송과 파티 기획 등을 하는 창작 집단 '360사운즈'의 이진복(33)씨는 작년 겨울 '프라이빗 로드 러닝 그룹'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음악인부터 학교 선생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 소모임이다. 2주일에 한 번 서울 방배동이나 가로수길 클럽에서 만나 옷 갈아입고 서로 몸 상태를 점검한다. "무릎 아픈 건 괜찮아요? 발목은요?" 그러고는 함께 10~12㎞씩 뛴다. 이씨는 "각자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부득이하게 밤에 뛸 수밖에 없어 나이트 러닝을 시작했는데,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고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기도 좋아 다들 좋아한다"고 했다.

이들이 밤에 달릴 때도 굳이 친구를 찾고 모임을 꾸리는 이유는 '빨리 지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전문 댄서 명수진(27)씨는 "혼자 뛰다 보면 외롭고 지쳐 금세 목표를 잃고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여럿이 모이면 서로 자극을 주고, 뛰는 거리를 늘리기도 쉽다"고 했다.

주말인 17일 오후 10시 양재천 일대엔 크고 작은 달리기 동호회 회원들로 북적였다.

대학원생 유희영(30)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야간 달리기 모임에서 운동을 한다. 달리다 보면 내 몸 상태도 정확히 알 수 있고, 앞날에 대한 고민도 잊을 수 있다"고 했다.

◇'달리기=축제' 청춘이 열광하다

달리기에 빠진 20·30대는 각종 행사나 대회에도 적극적이다.

'발가락 신발'로 알려진 '비브람파이프핑거스'의 우미례 팀장은 "SNS로 '발가락 신발 신고 여의도에서 만나 뛰자'는 메시지를 보내면 금세 30~40명이 그 신발을 신고 모인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달리기할 때도 스타일과 취향이 맞는 사람을 찾는다"고 했다.

지난 4월 나이키가 이태원에서 주최한 '이태원 프리런' 행사엔 하루 만에 참가자 500명이 몰렸고, 16일 선유도공원에서 열린 '프리 플라이니트' 달리기 행사엔 200여명이 왔다. 푸마가 오는 9월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여는 '나이트 런' 행사엔 이미 1000여명이 신청했다.

회사원 김현(32)씨는 "마라톤대회는 좀 부담스럽지만 '깜짝 밤 달리기' 행사는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할 수 있고, 무엇보다 여럿이 달리다 보면 마음 깊이 꾹꾹 눌려 있던 온갖 욕구가 자연스럽게 분출되더라"고 했다. "이건 일종의 축제예요. 앞날에 대한 고민, 현실의 무게를 잊고 뛰는 것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푸마 코리아 이원희 마케팅 과장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 "20·30대가 80%쯤 됩니다. 요즘 젊은이에게 달리기는 어렵고 지루한 운동이 아니라 일종의 해방구를 찾을 수 있는 집단 놀이로 인식되는 것 같아요. 낮엔 현실을 지고 뛴다면 밤엔 탈출을 위해 뛰는 것일 수도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