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人] "暴炎, 이기려 하지 말고 피하세요"

젊고 아름다운 여성 기상캐스터들이 일기예보를 도맡기 전, 국민들은 김동완(78) 전(前) 기상통보관에게서 내일의 날씨를 전해들었다. 그의 표현을 빌려 이 '도둑놈같이 생긴 아저씨'는 굵은 매직펜으로 기압선을 그려가며 투박하지만 편안한 목소리로 예보에 속담과 생활정보를 녹였다. 혹서기나 환절기에는 "건강에 유의하라"며 따뜻하게 시청자들을 챙겼다.

서울의 열대야 일수가 19년 만에 최다를 기록했다지만, 지난 16일 서울 신정동에서 만난 김동완씨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이 되는 월복(越伏) 현상이 나타나는 해는 예로부터 늦더위가 있었다"며 차분히 말했다. "삼복더위도 세 번 엎드리면 물러간다고 합니다. 피서(避暑)는 있어도 극서(極暑)란 말은 없어요. 이기려 하지 말고 피하세요."

김동완 전 통보관은 1965년부터 1997년까지 33년간 일기예보를 했다. 공군 조종사의 꿈을 접고 들어간 중앙기상대(기상청 전신)에서 기상 분석을 하던 그는 1965년 예보 전달 부서 사무관이 되며 방송과 인연을 맺게 된다. 방송 뉴스 말미에 앵커가 "지금부터 마이크를 중앙기상대로 옮겨서 날씨를 전해 드리겠습니다" 하면 기상대 공무원이 예보를 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처음 방송을 맡았을 때만 해도 일기예보를 눈여겨보는 시청자들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의욕껏 방송을 해도 일기예보는 '아무도 안 보는 뉴스'였다. 그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했다. 기상대 자료와 전문서적에도 나오지 않는 날씨 이야기를 찾아간 곳이 동네 복덕방이었다. "퇴근 후 복덕방에서 어르신들에게 날씨 이야기를 물었죠. 젊은 사람이 찾아와 귀 기울이는 모습이 기특했나 봐요. '더위 먹은 소는 달만 봐도 헐떡거린다', '장마는 나이 많은 아내의 잔소리다' 같은 날씨 속담들은 물론 24절기의 원리도 이곳에서 익혔죠."

그가 도입한 '생활예보'는 딱딱한 예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방송국의 성화에 3교대로 근무하던 김동완은 졸지에 방송 전담관이 됐다. 처음 생긴 직책이었다. "한 방송국에서 김동완 사무관이라고 하니 어색하다고 멋대로 통보관이라고 붙였는데, 그게 정식 명칭이 됐어요."

그를 '모셔가기' 위한 방송국들의 경쟁도 치열했다. 1974년부터는 TBC(동양방송)의 일기예보를 전담했고, 퇴직 후 1982년부터는 MBC에서 기상캐스터를 맡았다. "TBC 예보를 전담하게 되니까 타 방송국 사장이 다짜고짜 데리고 가선 백지수표를 내밀며 '마음껏 적으라'고 하더군요. 다른 방송국에서 저를 탐내니까 이병철 회장이 TBC에서 10년 채우면 삼성 종신이사를 시켜주겠다고 하셨죠. 80년 5공의 방송통폐합조치로 TBC가 없어지지 않았다면 좀 다르게 살았겠죠. 하하!"

80년대 컬러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그는 기상대를 퇴직하고 MBC에서 본격 기상캐스터를 맡았다. 타 방송 9시 뉴스를 보다가도 날씨 할 때가 되면 MBC로 채널이 돌아갔다. 그때 돌아간 다이얼은 그대로 10시 드라마 시청률로 이어졌다.

맑은 날엔 그의 표정도 밝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많았다. 1984년 여름, 경기도 일산의 제방이 무너지고 서울 망원동 일대가 침수되는 최악의 수해가 발생했다. "꼬박 72시간 동안 TV와 라디오를 번갈아가며 생방송을 했어요.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재난 뉴스에 이어 예보를 붙였죠. 하루가 지나 KBS의 후배 기상캐스터가 과로로 쓰러지기도 했어요."

통보관의 숙명인 오보(誤報)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날이었다. 오전 6시 생방송에서 "어린이 얼굴만큼이나 맑은 날씨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는데 방송국을 나서니 폭우가 쏟아지더군요. 비를 맞으며 걷다가 원망스러운 하늘이 보이지 않는 목욕탕에 들어갔어요. 근데 손님들이 절 알아보고 '김 선생, 비 안 온다더니 이게 뭡니까'라는 거예요. 그래도 집에 가면 욕 안 먹겠지 싶어 귀가했는데, 아내가 '이게 뭐냐'고 따지더군요. 통보관은 실수를 숨길 곳이 없어요."

서슬 퍼런 오보도 있었다. 3공화국 시절,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오후 7시에 각하께서 주관하는 외국 상공인 가든파티가 있는데, 비가 오느냐"는 것. 그칠 것이라고 알려줬는데 비는 멈추지 않았다. 3시에도 5시에도 7시에도…. 결국 비는 그치지 않았다. 시계 초침 소리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그는 자신의 현역 시절 예보 정확도가 80% 수준이었다고 시인한다. 오히려 지금 기상청은 93~94% 수준으로 매우 높다고 한다. 그런데도 '수퍼컴퓨터도 있는데 왜 예전보다 못 맞히냐'는 욕을 먹는다. 그의 노하우는 이렇다. "'중부지방 대체로 흐리고 곳에 따라 비가 온다'라고 예보하면 비 안 오는 곳에서는 오보라고 생각해요. 저라면 '곳에 따라 한 차례 비가 오는 곳도 있겠지만, 대체로 흐리겠습니다'라고 예보하죠. 이러면 비가 오는 곳도 안 오는 곳도 다 제가 맞았다고 생각해요."

그는 후배 기상캐스터들에게 옷차림을 너무 화려하게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일기예보의 본질은 정보 전달인데 화려한 옷차림이 본질을 가리게 된다는 것. 그는 "전문성을 키우는 데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김동완씨는 "거듭되는 기상이변에 한반도의 기후변화가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 섞인 염려하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그의 생각은 좀 다르다. 매스컴이 발달하며 세상 구석구석 일어나는 기상이변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다 보니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크다고 한다. 그보다 현대인들의 몸이 혹독한 날씨에 적응하는 능력이 약해진 측면이 크다고 한다.

"옛말에 '여름 손님이 호랑이보다 무섭다'고 했습니다. 여름 손님(더위)이 있어야 가을 손님(결실)도 온다고 하지요. 각별히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지금까지 김동완 통보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