失笑 나오는 미소금융, 먹구름 끼는 햇살론… MB 서민금융 흔들

#장면1= 19일 서울의 한 미소금융재단 지점. 창업을 희망하는 저신용자들에게 소액의 창업자금을 빌려주는 곳이다. 그런데 대출을 담당하는 직원이 한 사람뿐이었다. 1년 전만 해도 3명이었는데, 불경기로 대출을 원하는 사람이 격감하면서 직원도 줄어든 것이었다. 이날도 손님이 없어 창구는 한산했다.

#장면2= 같은 시간 인근의 한 저축은행 대출 창구. 한 고객이 대출 상담을 받고 있었다. 10분 남짓 흘렀을까. 고객이 밝은 표정으로 일어섰다. 대출이 잘 됐느냐고 물으니 "별 심사 없이 500만원을 대출받았다"고 답했다. 이 고객이 문을 나서자, 곧 해당 대출 창구는 다른 고객이 자리를 잡았다.

장면 1·2는 이명박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했던 대표적인 서민금융, '미소금융'과 '햇살론'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올 들어 미소금융의 대출 실적은 급감했고, 햇살론은 부실 저축은행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대출 실적 격감하는 미소금융

2009년 12월 출범한 미소금융은 창업을 희망하는 저신용자들에게 5년 만기로 최대 5000만원까지 연 2~4.5% 금리로 사업자금을 빌려주는 것이다.

재원은 대기업과 은행들이 2020년까지 '기부'하는 2조2000억원으로, 각 기업과 은행들이 만든 재단이 전국 각지에 설치한 지점을 통해 대출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미소금융의 대출 실적이 올 들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신한은행이 만든 신한미소재단의 경우 지난해 4분기 50억원, 올해 1분기 41억원, 2분기 34억원 등으로 줄고 있다.

KB국민은행이 만든 KB미소재단의 경우 올해 상반기 62억원이 대출돼 1년 전 같은 기간 101억원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경기 부진으로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이 줄어서 실적이 줄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소금융의 부진에는 정부가 바뀌면서 추진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사실 미소금융은 기부와 금융이 결합된 기형적인 구조"라면서 "지난 정권에선 어쩔 수 없이 했지만, 압박이 없는 지금 정권에선 (대기업과 은행들이) 열심히 할 유인이 없다"고 말했다.

열기가 식다 보니 각 미소금융 지점에선 업무를 담당하던 자원봉사자들이 대거 이탈해 운영상 어려움까지 나타나고 있다.

미소금융재단 관계자는 "자원봉사자들이 금융업무를 볼 수 있도록 비용을 들여 교육을 시키는데, 중간에 이탈하는 사람이 많아 지점 운영이 어렵다"고 말했다.

◇저축은행 먹여살리는 수단으로 전락한 햇살론

지지부진한 미소금융과 달리 햇살론은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 햇살론은 신용등급 6등급 이하 또는 연소득 2600만원 이하인 근로자·자영업자·농어민 등을 대상으로 연 8∼11% 금리에 최대 1000만원까지 대출을 해 주는 상품이다. 미소금융이 창업자금이라면 햇살론은 생계형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햇살론 대출 실적은 지난해 초 200억원대에 불과했는데 올 1월 처음 1000억원을 넘어선 뒤 지난 7월엔 1916억원을 기록했다. 올 들어 7월까지 총 대출 실적은 9752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5배다. 햇살론의 과열 양상은 작년 8월 보증비율을 높인 데 따른 것이다. 햇살론은 대출자가 빚을 갚지 못하면 민관 합동으로 만든 2조원의 보증 재원이 대신 갚아 준다. 그런데 정부가 햇살론을 활성화하겠다면서 보증비율을 85%에서 95%로 올렸다. 돈을 떼여도 대출을 해주는 금융사 입장에선 부담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햇살론에 대한 보증비율이 크게 오르자 저축은행들이 묻지 마 대출에 나섰다. 금융권 관계자는 "햇살론이 부실 저축은행들의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체율 급증, 지속 가능성 의문

더 큰 문제는 미소금융과 햇살론의 연체율이 급격히 올라가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KB국민은행 미소금융의 경우 2분기 말 연체율이 6.79%를 기록, 1년 전 4.3%보다 크게 올랐다. 우리은행은 3.44%에서 7.71%로 올랐다. 1%대 초반인 일반 가계대출 연체율과 비교하면 5~6배에 이르고, 10% 내외인 대부업체 연체율에 근접해 가고 있다.

햇살론은 더 심각하다. 햇살론은 보증 재원이 대신 빚을 갚아준 대출의 비율인 '대위변제율'로 부실률을 산정하는데, 2011년 6.2%에서 지난해 10.4%로 급등했고 올해도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대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지속 가능한 서민금융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대출 금리를 현실화하고 연체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근본적으론 정부가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정치' 금융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