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석 대장의 산악인 정신으로 사업 개척한다

내겐 '산이 좋아 산이 된 사람'이 있다. 2011년 가을 안나푸르나 남벽 코리안 루트 개척 중 눈사태로 실종된 고 박영석 대장이다. 박 대장과는 1997년 가을 인연을 맺었다. 박 대장이 에베레스트봉(8848m)을 한국인 최초로 무산소 등정하고, 8000m급을 서너 개 더 오른 후 초오유봉(8201m) 등정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당시 히말라야 14좌를 다 오르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대학 산악부 출신이었던 나는 시원찮은 장비 때문에 등반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어서, 후배 산악인들에게 장비를 비롯하여 무언가 도움을 주어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때는 ㈜영원아웃도어(옛 골드윈코리아)에서 노스페이스 브랜드를 막 냈을 때다.

박영석 대장에게 "가지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다. 그는 "동국대학교 다닐 때 서울 장충동 영원무역 쇼윈도에 있던 고성능 등산복을 언제 한번 입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답했다. 그래서 그에게 노스페이스 제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년 정도 지원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겠다"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대학 산악부로 활동한 사람치고 고산 등반을 꿈꾸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못 한 탐험을 후배가 한다는데 도와줄 위치에 있으면서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 원정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그에게 고정적 수입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다. 박 대장은 처음 집에 생활비를 갖다 주니 아내(홍경희 여사)로부터 크게 칭찬받았다며 좋아했다.

전문 산악인이 기업이나 단체와 계약을 맺고 생계의 압박에서 벗어나 등반에 전념하는 것은 당시로선 없던 일이다. 최근 아웃도어 시장이 성장하면서 그런 사례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런 관계는 업체 입장에서 제품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검증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경영자는 소속 산악인들을 통해 등반의 대리 만족을 느낄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나는 대리 만족 정도가 아니었다. 그는 기존 등반로보다는 항상 새 길을 찾는 도전 정신으로 뭉쳐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박 대장의 산악인 정신으로 지금까지 사업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등반과 경영은 비슷하다. 등반이든 사업이든 힘들다고 멈춰서는 안 된다. 1991년 방글라데시 치타공의 영원무역 공장에 해일과 사이클론이 닥쳐 공장 전체가 물에 잠긴 적이 있다. 주문을 받아 생산했던 옷 30만벌을 모두 잃어버렸고 공장은 흙더미로 가득 찼다. 공장 철수를 고민했다. 그런데 현지 근로자들은 너무나 열심히 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다. 흙더미가 무너져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을 피하지 않았다. '저들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공장을 재건하겠다고 나서는데 이걸 뿌리치고 갈 수가 없다. 그냥 여기서 한번 더 해보자' 하고 마음먹었다. 거기서 멈췄다면 지금 정도의 영원무역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탐험 정신도 비슷하다. 영원무역이 사양산업으로 치부되던 섬유 산업 중에서도 시장 상황이 매우 왜소하고 불투명하던 아웃도어 의류 사업을 키워 아웃도어 산업의 세계적 발전에 기여하게 된 것도 산을 타는 탐험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부한다.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처음 출시했던 1997년, 주요 의류 시장은 대기업들이 위탁 대리점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어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았다. 나는 '선(先)주문 후(後)생산 방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점포 주인에게 제품을 맡겨 놓고 파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점포에 완전히 물건을 파는 방식이었다. 각 점포 주인은 자기 책임 아래 장사를 해야 한다. 점포는 필요한 만큼만 주문했고, 나는 예측 가능한 경영을 할 수 있었다. 덧붙여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는 장점이 있었다. 말하자면, 유통 혁신이었다.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는 내 뜻을 밀어붙였고, 결국은 성공했다. 현재는 160여 전문점을 포함해 총 290여 매장을 갖추고 있다.

동료나 주변 사람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에서도 등반과 사업은 닮았다. 산행에서는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가야 한다. 나는 기업의 이익을 환원한다는 생각으로 박영석 대장과 함께 '희망원정대'를 지원하고 '희망 찾기 등반 대회' 등을 개최하면서 소외된 이웃을 조금이라도 돕기 위해 노력했다. 2010년에는 '박영석탐험문화재단'도 만들었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이라 했던가. 박영석 대장은 재단 출범 1년 뒤 영원히 산으로 갔지만, 그의 이름과 박애 정신은 나와 그를 아는 모든 이의 뇌리와 노스페이스의 사업 정신에 더욱 깊이 새겨졌다.

원래 미국 노스페이스의 슬로건은 '도전을 멈추지 말라'는 의미의 'Never Stop Exploring'이다. 나는 여기에 남에게 희망을 주며 살자는 'Never Stop Dreaming'을 덧붙여 쓴다.

박영석 대장은 평소 검은 노스페이스 모자를 트레이드마크처럼 늘 쓰고 다녔다. 나는 그를 추념할 때마다 양복을 입었든 무엇을 입었든 흰색 노스페이스 모자를 쓴다. 그러면서 '도전과 나눔 정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새긴다.


[성기학 회장은]

아웃도어 매출 10년째 1위, 동남아 어린이에 의류 지원… 기부활동으로 공로패도 받아

성기학(成耆鶴·66) 영원무역 회장은 어린 시절을 경남 창녕에서 보냈다. 서울에서 출판업을 하던 성 회장의 아버지는 6·25전쟁 때 고향인 창녕으로 피란을 갔다가 눌러앉아, 농민 계몽과 농업 기술 보급 운동을 펼쳐 창녕이 전국적 양파 생산지가 되는 데 기여했다. 성 회장은 농장에서 아버지를 도우며 세일즈 기법 등을 자연스레 익혔다고 한다.

서울사대부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성 회장은 서울통상을 다니다가, 1974년 동업자 2명과 다운 점퍼를 만들어 파는 영원무역을 설립했다. 1979년 국내에 다운웨어 붐이 일었을 때는 국내 유명 브랜드 제품 대부분을 영원무역에서 생산할 정도였다.
1984년 성 회장은 회사를 단독 경영으로 전환해 아웃도어 시장에 집중했다. 영원무역은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으로 해외 유명 아웃도어 브랜드에 제품을 납품했다. 1997년 영원무역은 자회사인 골드윈코리아(현재는 영원아웃도어)를 통해 세계적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를 국내에 팔기 시작했다. 노스페이스는 2003년 국내 아웃도어 매출 1위에 올라섰고, 이후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성 회장은 기부 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2009년에는 동남아시아 어린이들에게 10년 동안 의류를 지원한 공로로 국제 구호 단체인 월드비전으로부터 공로패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