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푸·생리대, 1위 만들었죠… 여자 느낌 아니까"

2009년 당시 글로벌 생활용품 회사 P&G의 아시아 마케팅 디렉터를 맡고 있던 이수경(46) P&G 한국지사장은 시장 조사를 하기 위해 인도의 한 시골 마을을 방문했다. 델리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그곳은 물이 부족해서 주민들이 일주일에 한 번 머리를 감기도 어려웠고, 경제적 수준도 넉넉지 못했다.

헤어용품 판매에 주력하고 있던 이 사장은 '이런 곳에서 과연 경쟁사보다 비싼 헤어 제품을 팔 수 있을까' 고민에 빠졌다.하지만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부족 여성들이 손발톱에 곱게 주홍색 매니큐어를 칠한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수경 디렉터는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이렇게 강하다면 분명히 수요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펼쳤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인도를 비롯해 태국·베트남 등에서 주력 제품 매출을 40% 이상 신장시킬 수 있었다. 여성의 눈높이에서 여성의 시선으로 포착해낸 관찰력이 성공을 이끈 주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작년에 한국 P&G 최초 여성 CEO가 된 이수경 지사장은 사원으로 입사해 사장에까지 올랐다. 1994년 입사해 생리대 '위스퍼'가 시장 1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고, 1999년엔 샴푸 '팬틴'을 1년 반 만에 시장 1위 브랜드로 이끌기도 했다.

성공 비결에 대한 이 사장의 답변은 간단했다. "소비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고민하죠. 내가 여성이기에 더 섬세하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회사의 모든 상품은 세부 사항까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P&G 제품은 모조리 직접 써 봅니다. 면도기는 수염이 없으니까 팔다리에 대고 시험하지요. 그래야 소비자의 불편함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전국 방방곡곡, 해외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수시로 소비자들과 대면해서 몇 시간이고 대화하기도 했다. 아시안 디렉터였을 당시엔 사무소가 있는 싱가포르보다 해외 출장을 갔던 시간이 더 많았을 정도다. "우리 제품은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어요. 소비자들과 대화하면서 아침에 일어나 무엇을 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를 듣다 보면 우리가 무엇을 할지 그림이 그려지니까요."

이 사장은 결혼·출산 후 입사한 '늦깎이 신입사원'이었다. 동기보다 나이도 많고, 육아 때문에 회식에도 참여하지 못해 소외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그때마다 '실적으로 승부하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생활용품업체이다 보니 여성으로서, 주부로서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95년 '생리대 광고는 공중파 광고를 하지 않는다'는 금기를 깨고 업계 최초로 텔레비전에 생리대 광고를 내보냈다.

당시 그가 강조한 것은 '시간이 흘러도 늘 보송보송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이었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제품인데도 왜 쉬쉬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고 모델들도 전문직 여성들을 써서 당당하게 선전했죠."

하지만 다른 직장 여성들처럼 직장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은 그에게도 큰 도전이었다. 이 사장은 "내 선택이 옳은 것인지 줄곧 고민했다"고 했다. "제 경험에 미루어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방황하는 데 쓸 에너지를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쏟으면 문제가 하나씩 풀리더란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