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만에 재결합하는 産銀·정책금융공사, 썩 달갑지만은 않다는데…

산업은행과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지난 2009년 분리된 지 4년여 만에 다시 합친다. 금융위원회가 이달 말 재통합 방안을 확정 발표하면 국회 심의를 거쳐 연내 재통합 실무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현재의 산은금융지주는 해체되고 정책금융공사 분리 이전의 산업은행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

논란이 적지 않다. 산은 민영화에 대한 정부 정책이 백지화되면서 자산이 165조원(산은), 71조원(정금공)에 이르는 대형 금융기관을 뗐다 붙이는 데 막대한 비용만 낭비된다는 것이다. 통합을 앞두고 양측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고, 우리 정부의 대외 신인도가 저하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 득실을 따져보고 시곗바늘을 되돌려서 산은과 정금공의 통합을 추진할까.

◇산은 민영화 백지화로 정책금융공사 폐지 불가피

정부는 산은과 정금공 통합의 필요성과 효과를 ①중복 업무에 따른 비효율 제거 ②정부 재정 부담 축소 ③정책금융 역량 집중 등이라고 설명한다.

정책금융 기능을 한곳으로 통합하면 정책기관 간 불필요한 경쟁을 해소하고, 좀 더 체계적으로 자금 지원이 필요한 기업들을 도울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두 기관의 기업 지원 업무는 중복이 심하다. 대기업이나 SOC·지역개발, 기업 구조조정 등의 분야가 대부분 겹친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두 기관 업무의 70%가 중복되고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정부는 그러나 통합으로 얻게 될 경제적 효과에 대해 아직 명확한 수치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산은을 국책은행으로 유지하기로 했으니, 정책금융공사는 불필요하다. 그렇다면 통합은 당연하다는 식이어서 통합의 필요성, 득실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가 늦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으로 기업 자금 지원 29조원 감소 가능성 등 부정적 전망도 많아

정책금융공사는 출범 이후 지난 정책금융의 본류를 산은에서 넘겨받기 위해 급격하게 몸집을 키웠다. 2009년 108명이었던 직원이 지난해 말 418명으로 4배가량 늘어났을 정도다. 이런 상황이라 정책금융공사는 통합에 부정적이다. 통합될 경우 산은에 흡수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래서 통합의 단점과 부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산은 민영화 비용 2500억원 낭비, 산은 건전성과 재무구조 악화, 중소기업 지원 축소 가능성 등을 거론한다.

우선, 산은과 정금공에 따르면 산은 민영화 추진으로 두 기관이 지출한 경비는 최소 2500억원에 이른다. 산은이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산은 민영화 추진 비용' 자료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2011년부터 21개 소매금융 지점을 새로 만들고 운영하는 데 160억원, 신규 인력 인건비로 81억원, 통합 전산망을 구축하고 인력을 채용하는 등 산은금융지주 설립에 465억원 등 총 706억원을 썼다. 정금공은 인건비와 전산 개발비로 1820억원을 썼다고 밝혔다.

통합으로 산은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금공은 산은이 가진 공기업 주식 등 매년 이자 부담을 5000억원씩 안기는 무(無)수익 자산과 15조5000억원 규모 부채를 넘겨받았다. 통합하게 되면 이런 부채들이 산은의 건전성을 악화시키게 된다. 은행의 건전성 지표인 BIS 비율이 1.5% 정도 떨어지게 된다. 지난 6월 말 현재 산은의 BIS 비율은 13.5%다. 산은 추정치만큼 BIS 비율이 떨어지더라도 금융감독원의 기준선인 10%를 넘긴 하지만, 기업에 공급할 자금 여력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 정금공의 주장이다. 정금공은 "BIS 비율 1.5% 하락 시 기업 자금 공급 여력이 29조1000억원 감소하며, 이로 인해 신규 고용 창출 효과를 약 9만2000여명 상실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또 산은과 정금공은 자금난을 겪는 STX그룹의 주채권은행으로 관련 여신 4조2000억원을 떠안고 있는 등 조선·건설·해운 등 취약 업종 기업에 20조원이 넘는 대출을 갖고 있는데, 이들에 대한 충당금을 반영하면 산은 BIS 비율은 10% 미만까지 하락할 수 있다고 정금공은 주장한다.

또 산은이 정책금융을 전담하면 현재 정금공이 수행하는 중소·벤처기업 지원이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금공법에는 '중소기업 지원'이 설립 목적으로 명시돼 있지만, 산은은 이런 조항이 없다. 정금공 관계자는 "중소기업 지원에 쓰일 재원이 대기업 지원에 전용(轉用)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숭실대 금융학부 윤석헌 교수는 "산은과 정금공을 무조건 통합하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나중에 분리가 필요하다고 두 기관을 다시 떼겠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니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