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단, 유럽에선 휴가 중 런던에선 연주 중

악단들도 휴가를 간다. 오케스트라가 시즌을 끝내고 여름이 시작되면 베를린, 잘츠부르크, 빈 등 유럽의 음악 도시들이 일제히 고요 속에 빠져든다. 단 한 곳, 런던은 예외다. 이곳에선 새로운 음악 시즌이 시작된다. 영국 최대 여름 음악 축제 BBC 프롬스(Proms)다.

7월 12일 시작해 9월 7일까지 열리는 프롬스는 세계 정상급 악단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음악의 성찬이다. 바렌보임이 이끄는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얀손스의 바이에른방송교향악단, 마젤의 빈 필하모닉, 안토니오 파파노의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야닉 네제-세갱의 로테르담 필하모닉, 대니얼 하딩의 말러 챔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연주 단체와 BBC 필하모닉, 런던 필하모닉, 로열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등 영국 오케스트라가 나선다. 축제의 주무대인 하이드 파크 옆 로열 알버트홀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음악회가 열린다.

지난 19일 밤 9시 30분(현지 시각) 로열 알버트홀. 6000명이 넘는 관객들이 두 발로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천둥 치듯 울렸다. '천재'로 불리는 지휘자 로빈 티치아티(30)가 이끄는 BBC 스카티시 챔버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영웅' 피날레를 막 끝낸 참이었다.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티치아티를 보려는 관객들이 5000석 넘는 객석은 물론 1400명까지 드는 1층 아레나와 5층 갤러리 입석까지 차지했다.

입석은 록 페스티벌처럼 뜨겁고 자유로운 프롬스의 상징이다. 공연장 1층의 의자를 대부분 걷어내고 운동장처럼 비웠다. 객석 앞쪽은 바짝 붙어선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지만 뒤쪽에선 바닥에 앉거나 드러누워 보는 이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티치아티는 이날 '영웅'을 실내악 연주하듯 정교하고 세심하게 빚어냈다.

1895년 시작된 프롬스는 음악을 듣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비싼 휴양지로 가는 대신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서 만날 수 있는 도심 음악 축제다. 클래식 대중화를 겨냥해 티켓 값을 내렸고, 레퍼토리도 쉬운 것을 골랐다. 공연 당일에만 줄 서서 살 수 있는 5파운드(약 9000원)짜리 저렴한 입석도 있다.

이번 프롬스에선 한국 아티스트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베이스 연광철이 바그너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 주역으로 나서고, 김선욱은 본머스 심포니와 베토벤 협주곡 3번을 연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