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정원의 가치, 우리만 몰라요"

뙤약볕을 피하려 눌러쓴 밀짚모자 아래로 갈래머리가 보였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인사하는 그의 피부는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했다. '첼시의 여왕' 황지해(37)는 수수한 풍모였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180년 전통의 국제 정원 박람회인 '첼시플라워쇼'에서 '해우소:마음을 비우다(20㎡)'와 '고요한 시간-DMZ 금지된 정원(200㎡)'으로 2011년과 2012년 연속으로 최고상을 거머쥐었던 주인공. 국내에서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유명한 황지해는, 국내 첫 정원 박람회에 작품을 선보이면서 모처럼 한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푹푹 찌는 더위 속, 전남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장에서 만난 정원 디자이너 황지해는 "도서관에서 피서하자"고 말했다. '도서관'이란 본인의 출품작 '갯지렁이 다니는 길' 안에 설치한 공간이다.

황 작가는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개막일인 4월 20일 전날까지 184일을 순천에서 지냈다. 설계부터 식재 전 과정에 노숙하다시피 하며 참여했다. 그는 "거의 막노동 수준"이라며 웃었다. "보이지 않는 갯벌의 생명력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갯지렁이가 다니는 길을 형상화했는데 하늘에서 보면 거대한 나뭇잎처럼 보이죠. 쥐구멍 카페며 개미굴 휴게 공간, 갯지렁이 배 속에다 만든 도서관과 갤러리에서 아기자기한 재미를 느껴보세요."

갯지렁이 정원은 주변부보다 움푹 들어간 '성큰(sunken) 가든'이다. "2m 이상 파면 뻘층이 드러나 설계대로 나무 심기가 힘들었어요. 두툼한 언덕을 만든 뒤에야 큰 나무 식재가 가능했죠. 정원 입구에 심은 회화나무 30여 그루는 도로를 확장하고 버린 나무들을 옮겨다 놓은 거예요. 큰 나무 살 돈이 없다고 하니깐 공무원과 인부들이 팔을 걷어붙였죠."

박람회장 핵심 동선에 자리 잡은 갯지렁이 정원은 인기가 많다. '황지해를 위한 박람회'라는 말이 있을 만큼, 260만 누적 관람객의 필수 코스다. "이 정원이 '첼시 여왕'의 작품이냐고 물으며 일부러 찾아들 오세요. '힐링하고 간다' '책 한 권 본 느낌이다' 하신 분도 있고, '돈을 줄 테니 비슷한 정원 만들어달라'고 떼쓰는 분도 있었죠(웃음)."

전남 곡성 출신인 황지해는 "고향이나 다름없는 순천에서 국내 첫 정원 박람회가 열리고, 그곳에 영구 보존용 정원을 만들게 돼 영광"이라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 아름다운 정원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첼시플라워쇼보다 훨씬 편안하다고도 했다.

황 작가는 목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0여년간 전국을 무대로 환경미술 작업을 했다. 그는 "대학에서 목공예와 조소, 철학, 염색 공예, 퀼트(수예), 환경 디자인 등을 공부한 게 정원 조성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황지해를 스타덤에 올린 '해우소 정원'은 처음엔 비웃음을 샀다고 했다. "어떻게 화장실로 정원을 만드느냐는 거죠. 농담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러나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낯선 동양의 정원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2012년 첼시플라워쇼 최고상과 영국왕립원예학회(RHS) 회장상을 동시에 받은 'DMZ 정원'은 런던 플레저 가든으로 옮겨져 2016년까지 전시된다.

황 작가의 고민은 언제나 '예산'이다. 후원자가 선뜻 나서질 않아서다. 올해 첼시는 황 작가를 초대했지만 황 작가는 포기했다. 지난 14일이 설계 출품 마감일. 2년 연속 첼시에 가느라 수억원을 빚져서 이번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한국은 유럽과 달리 정원의 상업적 가치를 아직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일본만 해도 정부 주도로 일본식 정원을 세계에 전파하고 있거든요. 저는 고작 세계 정원 시장의 문을 열었을 뿐이에요. 한국 고유의 정원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입니다. 많이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