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著者] 남이 대신 쓰거나 다듬어 준 글로 책 내는 사람

"저자 원고를 교정·교열만 보고 내는 책은 0% 아닐까. 저자 이름만 가져다 붙인 책도 있다."(A출판사 대표)

"요즘 자기계발서는 출판사가 초고를 20~30% 넘게 윤문(潤文)해 낸 책이 과반수다."(B출판사 대표)

'글로 써서 책을 지어낸 사람'이라는 저자(著者)의 사전적 의미가 흔들리고 있다. 글을 쓰지 않고도 저자가 되는 세상이 열렸기 때문이다. 자기계발·경제경영 분야의 경우 "신간 10종 중 저자가 완고(完稿)를 써서 나오는 책은 5종 미만"이라는 말도 들린다. 최근 유행인 '강연형 책'의 경우, 저자는 콘셉트나 녹취록만 던져주고 출판사가 목차부터 구성, 초고 작성까지 떠맡는 일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성공담을 담은 CEO 자서전은 대부분 대필이나 윤문 작가에 의존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름뿐이고 글쓴이는 따로 숨은 '가짜 글'이 횡행하고 있다. 대리모(대필 또는 윤문 작가)를 통한 '책 씨받이'와도 같다. "어느 유명 저자는 우리 출판사에서 사실상 그런 방식으로 책 여러 종을 냈다"는 증언도 나왔다. C출판사 대표는 "수백만원 주고 윤문 작가를 따로 고용하다 보니 '저자란 누구인가'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판"이라고 했다.

이 현상을 '책의 다양화'로 보는 시각도 있다. 유정연 흐름출판 대표는 "강연 녹취록엔 어차피 강연자의 생각이 담겨 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안 된다"면서 "지금은 어떤 관점으로 엮어주느냐가 중요한 '큐레이션 시대'"라고 말했다.

몇 해 전부터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쓴 '정의란 무엇인가'를 시작으로 스튜어트 다이아몬드의 '어떻게 원하는 것을 얻는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등 해외 유명 대학 교수의 강의가 책으로 묶여 많이 팔리고 있다. 최세라 예스24 도서팀장은 "최근에는 국내 강연이나 라디오·팟캐스트 등에서 인기를 끈 콘텐츠들이 책으로 출간되고 있다"면서 "'듣기'에서 '읽기'로의 변형이자 확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