病床 털고 포효… 일흔 둘의 '사자왕' 도밍고

지난 13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자코모 역을 맡아 베르디 오페라 '조반나 다르코'(잔다르크)를 불렀을 때, 청중 여럿이 눈물을 흘렸다. 병상을 털고 일어선 도밍고의 투혼이 가슴을 울렸기 때문이다.

올여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베로나 축제에서 도밍고의 공연 티켓을 산 이들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도밍고가 지난 초여름 갑작스러운 색전증으로 마드리드의 한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도밍고는 벌떡 일어나 올여름 모든 스케줄을 다 소화하겠다고 공언했고, 실제 무대 위에서 그는 건재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13일까지 '조반나 다르코'를 공연한 도밍고는 이탈리아로 이동해 15일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100주년과 베르디·바그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는 '갈라 도밍고-하딩' 프로그램으로 축하 공연을 펼쳤다.

도밍고는 1부에서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의 성배 기사의 마지막 노래 '그대들에게 성창을'을 들려줬다. 2부에서는 바그너 발퀴레 중 지그문트의 아리아 '겨울 폭풍우는 달빛에 사라지고'를 통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활약했던 헬덴 테너의 모습을 보여줬다. 2부 피날레에서 그는 바리톤으로 전향하며 택했던 첫 작품 '시몬 보카네그라'의 장면을 재현했다. 형식은 콘서트였지만 도밍고는 오페라를 공연하듯,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는 시몬 보카네그라를 처절하게 연기했다. 흰머리와 검은 의상을 입고 무대 위에서 포효하는 도밍고의 모습은 '사자왕의 귀환'을 떠올리게 했다.

앙코르도 인상적이었다. 지휘자 하딩이 도밍고에게 지휘봉을 넘긴 뒤 제2 바이올린 둘째 열에서 합창단과 함께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 중 '대장간의 합창'을 연주했다. 청중은 연주에 맞춰 손뼉을 치며 마지막 앙코르를 즐겼다. 다만 하딩의 지휘가 박력이 부족하고 드라마가 없었던 점은 아쉬웠다.

도밍고는 18일 베르디 '나부코'에 주인공인 나부코 역으로 다시 출연했다. 도밍고가 등장하기만 하면 오페라에는 긴장감과 활력이 넘쳤다. 도밍고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나부코 역을 맡았다. 도밍고는 나부코의 하늘을 찌르는 교만함, 딸에 대한 사랑, 그리고 죽은 아비가일레를 껴안고 흐느끼는 피날레 모습을 연기하고 노래하면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새로운 나부코상을 제시했다. 또한 저음 바리톤은 아니지만 테너와 바리톤이라는 구별을 뛰어넘은 유일하고 위대한 성악가이자 연기자로서 압도적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했다.

20일에는 도밍고가 개최하는 성악 콩쿠르 오페랄리아 20주년 기념 콘서트가 펼쳐졌고 1회 우승자인 인바 뮬라를 비롯한 역대 우승자들과 함께 즐거운 오페라 아리아 경연을 펼쳐보였다. 앙코르로 루치아 6중창을 10명이 부른 것도 매우 절묘한 선택이었다. 병상에서 일어서자마자 6일간 3회 공연이라는 초인적 일정을 소화한 도밍고는 24일 베르디 '아이다'를 지휘한다. 70대가 되면서 바리톤이라는 길을 택해 새로운 전성기를 이어가는 그는 역시 존경받는 우리 시대의 음악가다.


☞잘츠부르크 축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리는 대표적 여름 음악 페스티벌. 1920년 출범했다. 예술감독 카라얀이 세계적 축제로 키웠다. 올해는 7월 19일~9월 1일 열린다.


☞베로나 축제

이탈리아 베로나의 로마시대 원형 경기장(arena)을 무대로 활용한 오페라 축제. 올해 6월 14일~9월 8일 열린다. 1913년 시작됐으며 베르디와 푸치니를 주로 공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