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담댐 水沒 고향마을 추억 되살린 사진 2만장

"여기가 55년 살던 내 집, 이 개울이 동무들과 물장구치고 물고기 잡던 정자천입니다."

한 장의 흑백사진 앞에서 김재덕(68)씨는 "꿈에서나 찾던 고향 마을"이라며 울컥 눈시울을 적셨다. 김씨가 13년 전 전북 진안군 용담호 담수를 앞두고 떠나온 정천면 옛 망덕마을 원경(遠景)이다. 김씨는 이 마을이 수몰되면서 이웃 56가구 주민과 함께 고향을 등졌고, 다시 그 땅을 밟지 못했다. 김씨는 추석을 앞두고 내달 11일 개관을 준비 중인 용담호사진문화관 1층 전시실에 서 있다.

전시된 사진들엔 용담호 담수 전의 마을과 산천, 주민들이 그때 모습으로 생생히 담겨 있다. 웃음을 나누는 빨래터 아낙들, 줄넘기하는 어린이, 밭 가는 농부, 나물 캐는 할머니가 있다. 산골 주민들은 1995년 용담댐 공사가 시작되면서 한 집 두 집 고향을 떠나 뿔뿔이 흩어졌다. 사진들은 철거를 앞두고 문짝이 뜯긴 집 마당에 이별의 술상을 차린 뒤 울먹이는 장·노년들의 모습도 담고 있다.

용담댐은 물 8억1500만t을 가두는 국내 다섯 번째 큰 다목적댐으로 2001년 높이 70m, 길이 498m로 완공됐다. 만수위 수면이 36.24㎢로 진안 6개 읍·면 68개 마을이 물에 잠겨 주민 2864가구, 1만2000명이 떠났지만 그때 마을 정경과 사람들은 사진 속에 오롯이 남았다. 사진작가 이철수(60)씨가 댐 착공 직전부터 준공 때까지 6년여 동안 2만4000컷의 사진에 담았다.

"다시 찾을 수 없는 고향을 떠나는 이들의 슬픔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젊은 용기로 시작했으나 6년 넘게 매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전주의 평범한 회사원이던 이씨는 늦깎이로 1995년 서울예전 사진과를 졸업한 뒤 그해 여름 격해진 댐 반대 시위 현장부터 찾았다. 여러 차례 봉변하면서도 끝까지 마을을 맴돌며 땀을 쏟는 낯선 카메라맨에게 주민들은 마을회관을 잠자리로 주고 끼니도 나눴다.

이씨는 평생 홀로 살다 도시로 떠나는 시각장애 할머니, 굴착기로 헐리는 집을 바라보다가 넋을 놓은 할아버지를 앵글에 담았다. 눈물 속에 치러진 초·중학교의 마지막 졸업식도 찍었다. 이삿짐을 꾸린 뒤 '저승에서 만나자'며 헤어지는 주민과 함께 울면서도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댐 축조 후 1년 동안 매일 수m까지 논밭과 마을을 점령해오는 물길을 연속해 찍으며 허리춤까지 찬 물속을 넘나들었다.

이씨는 주민들이 고향을 떠나며 마을 어귀에 버린 쓰레기 더미들에서 재래 생활용구와 자료들도 챙겼다. 이씨는 최근 사진과 유물 모두를 진안군에 기증했고, 진안군은 용담호와 함께 준공된 정천면 모정리 쉼터를 사진문화관으로 리모델링했다. 개관 기념으로 용담댐 건설-이주 6년을 담은 사진 40점을 골라 '물에 잠긴 고향, 사진에 남은 사람'전을 갖는다. 가족사진과 일기장, 편지, 수첩, 족보들에서부터 등잔과 호롱불, 농작업 도구 등 2500점이 문화관 2층 전시실을 그득 채웠다.

향토사학자 이용엽(74)씨는 "이곳 문화관은 진안 6개 읍·면의 타임캡슐로, 잊혀가던 조상 대대 옛이야기들까지 되살려내 전율을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방대한 사진 및 유물·자료들을 앞으로 DB로 구축하며 계절에 따라 공사 진행, 담수, 이주 과정별로 전시회를 열면서 당산나무, 성황당, 꽃상여, 농사와 명절 민속 등을 주제로 기획전도 열어갈 예정이다.

실향민들은 진안읍과 충남 금산, 멀리는 전주와 대전, 서울로 흩어졌다. 실향민들은 매년 추석 고향을 찾아 배로 용담호를 건너 벌초와 성묘를 하고 망향의 설움을 나눴다. 강일고 진안 부군수는 "명절이 아니어도 떠난 주민과 남은 군민 모두가 언제든 어울려 추억과 향수를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