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300만원으로?… 장편 영화 찍었다!

300만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한국 근로자 평균 월급(211만원·통계청 자료) 한 달 반치에 해당하는 이 돈이면 750원짜리 신라면 4000개나 10㎏당 2만5000원짜리 쌀 1.2t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 300만원은 '한 장면도 찍기 힘든 돈'이나 다름없다. 한국 상업 영화 평균 제작비(약 45억원)의 1500분의 1이며, '설국열차' 같은 블록버스터 제작비(430억원)의 1만4000분의 1이다. 하지만 이돈구(29·사진) 감독에게 300만원은 세계 영화제에 초청받고, 극장에 개봉하는 103분짜리 장편 영화 한 편을 만들 수 있는 돈이었다. 그가 294만원 들여 만든 첫 장편 영화 '가시꽃'(22일 개봉)은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 부문과 지난 2월 베를린 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상영됐다.

이 감독은 2009년 6개월 걸려 '가시꽃'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이듬해 6개월 동안 콘티(촬영에 앞서 장면과 연출을 미리 그려 놓은 것) 작업과 캐스팅, 헌팅(촬영장 물색)을 마쳤다. 한 치의 낭비도 막기 위해서 특히 콘티를 꼼꼼하게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영화 예산 300만원은 이 단계에서 결정된 액수다. 배우를 비롯한 대부분 제작진 임금은 제외했다. 이 감독은 "당시 주변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했지만 난 그 돈으로 못 찍는다는 게 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 감독에게 100만원이 있었고, 나머지 200만원은 이 영화의 프로듀서이자 배우이기도 했던 김희성씨가 조달했다. 김씨가 돈을 구해온 2011년 8월 9일 다음 날부터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영화 속 계절 변화 때문에 8월에 한 차례, 9월에 네 차례, 11~12월에 다섯 차례, 총 10회에 찍었다.

예산 때문에 조명 장비는 아예 쓰지 않았다. 촬영에 필요한 장비와 장소, 소품은 제작진이 가진 것을 쓰거나 빌려 썼다. 동영상 촬영 기능이 있는 캐논 '5D MARK ll' 카메라를 32만4000원에, 렌즈와 녹음 장비 등은 다 합쳐서 46만1000원에 빌렸다. 촬영 장소는 대부분 감독과 조감독, 음향 담당의 집이었으며, 영화 속 교회와 카센터는 감독이 사는 동네에 있는 곳으로 허락받고 공짜로 찍었다. 옷은 기본적으로 출연 배우들이 알아서 챙겨 입고 왔다. 물에 빠지는 장면을 촬영한 주연배우 남연우씨는 자기 옷을 입고 왔다가 젖은 채로 집에 돌아갔다.

현장에는 감독과 카메라 감독, 조감독, 음향 담당 이렇게 네 명의 스태프만 있었고, 음향감독과 조감독은 조연 배우를 겸하기도 했다. 제작비 중 가장 액수가 큰 항목은 '식대(食代)'. 하루 두 끼 '삼각김밥과 컵라면' 혹은 '한솥 도련님 도시락'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초(超)단출한 식단에 73만원이 들었다. 이 감독은 "배우들이 길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말아서 죽처럼 퍼먹는 걸 보고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란 생각도 들었다. 돈이 아쉬운 건 그럴 때"라고 했다.

제작진에게 임금을 하나도 안 준 것은 아니다. 조연으로 출연한 전문 배우 세 명에게는 각각 5만원, 7만원, 10만원씩 건넸다. 두 번 출연해 10만원(5만원×2)을 받은 배우는 이들에게 중국 음식을 15만원어치 사줬다. 음향 담당과 음악 담당에게도 각각 10만원씩을 줬다. 이러고도 300만원 중 6만원이 남아서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이돈구 감독은 "300만원으로 찍었다는 사실을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감안하고 봐달라'는 것처럼 보일까 봐. 제작비와 상관없이 영화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다"고 했다. 이 영화는 손익분기점(750명)을 막 넘겼다.

☞영화 '가시꽃'은…

어리숙하고 착실한 스물여덟 살 청년 성공(남연우)은 고시원에 살면서 공장에 다닌다. 가족도 없는 외톨이인 그는 우연히 교회에 갔다가 장미(양조아)와 가까워지고 마음을 연다. 하지만 성공은 장미가 10년 전 자신과 친구들이 저지른 몹쓸 짓 때문에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고서 친구들을 찾아간다. 죄와 구원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