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이끌어가는 앞선 생각이 또 다른 새로움을 만들다

  • 정지현 시니어조선 편집장
  • PHOTOGRAPHER 김민관(민관김스튜디오)

입력 : 2013.08.28 09:31

THIS CAR | K9과 떠나는 건축 기행③

근대 건축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인천, 군산은 물론 근대 건축물을 복원한 ‘길거리 박물관’을 조성 중인 부여를 비롯해 전국에서 이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기아자동차 프리미엄 세단 K9의 건축 기행 세 번째 장소는 1916년 준공한 유서 깊은 근대 건축물로, 근대 지식인들을 배출한 신교육의 요람 배재학당이다.

건축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정신과 문화를 반영해 만든다. 한 나라와 도시의 이미지를 결정짓고 성격을 규정하는 것 또한 건축물이다. 최근 건축 기행이 새로운 여행 방식의 하나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역사적인 건축물은 물론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을 감상하기 위한 여행은 미술관 기행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 박물관으로 그 안에 자리한 건축물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과 다름없다.

K9
기아자동차 K9의 건축물 탐방 세 번째 행선지는 근대 건축물 배재학당이다. 19세기 말 개항과 더불어 서구의 건축 양식이 유입됨으로써 한국의 근대 건축은 새로운 전기를 맞이했다. 뿐만 아니라 뒤이은 일제 강점기로 인해 일본 건축 양식의 영향이 불가피했다. 쇄국정책 아래 원치 않던 개항으로 유입된 서구 문물은 능동적이라기보다 피동적이었고,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 민족 문화의 말살과 괘를 함께한 까닭에 근대 건축은 본래 가치보다 폄하되고 청산해야 할 유산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근대 건축은 당시 힘없던 우리가 우리 것을 지켜내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런 까닭에 당대 아름다운 건축미를 외면하고, 오늘날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결과를 야기하지는 않았을까? 일제의 잔재물이라는 오명 때문에 보존하기보다는 없애버리고자 한 대상이 되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어떤 부침의 시대였다 하더라도 그 당시 형성된 문화와 건축 또한 우리의 것, 이 땅의 것임에 틀림없다.

형태에는 문화와 정신이 담긴다

경운궁(덕수궁)을 중심으로 한 정동 일대는 근대의 외교, 종교, 교육 등의 역사가 담긴 곳이다. 외교관과 서양 선교사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서양식 해외 공관, 교회, 학교 등이 곳곳에 들어섰는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러시아공사관의 첨탑, 정동 교회 등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1916년에 지은 배재학당은 1900년대 초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근대 건축물로 가치가 높다.

“한국 근대 건축은 서양의 고전 건축 양식을 차용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일정 부분 서양의 건축 양식이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서양식을 차용하더라도 그 안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한국적 성향이 담겨 있다. 예컨대 고딕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라 해도 서양의 그것과 동일하지 않다. 건축 양식은 따랐을지라도 벽돌의 크기, 쌓는 방법 등은 우리 식이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근대 건축은 서양, 일본 등을 통해 타율적으로 이식된 건축이라기보다 동서양의 다양한 양식이 한꺼번에 들어오면서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배재대학교 건축과 교수이자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관장인 김종헌 씨는 말한다.

K9
기아자동차가 디자이너 수장으로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 혁신을 도모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우리나라의 개항이나 근대화는 수동적이었지만 유명 디자이너의 영입이 기업 차원에서 이루어진, 세계화를 목표로 한 전략이라는 근본적 차이는 차치하고 말이다). ‘해외 유명 자동차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했던 외국인’이지만 그가 직선의 단순함(The Simplicity of the straight line)이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기아자동차 디자인의 기틀을 마련하고, 경쟁력 있는 디자인을 완성한 저변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까지 구축된 기아자동차의 기술, 국내 소비자의 성향 등이반영되었음은 물론이다.

국내 기술과 해외 디자이너의 만남은 고급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주는 프리미엄 세단 K9으로 구현되었다. 헤드램프를 라디에이터 그릴보다 높게 장착해 고성능 럭셔리 세단으로서 강렬한 느낌을 주고, 범퍼와 후드의 구분 라인을 후드 쪽으로 상향 이동하고 후드 부위에 개성 넘치는 캐릭터 라인을 적용해 볼륨감을 살림으로써 품격을 높였다. 측면부는 후드에서 앞 범퍼 하단까지 하나의 면으로 연결되는 ‘원스킨 스타일’의 후드 ·범퍼를 적용해 역동적이면서 부드러운 실루엣을 완성했다. 한편, 펜더 가니시에서 뒷문까지 연결되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은 직선을 사용해 세련미를 더했다.
K9

혁신은 난관을 동반한다

배재학당은 건축적 요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으로서의 가치 또한 상당하다. 3층 규모의 작은 벽돌 건물로, 고층 유리 건물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음에도 초라하거나 위축돼 보이지 않고 당당한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건축물 자체에서 발산되는 아우라 덕분에 주변 빌딩의 물리적인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는 것이다.

19세기 후반~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이 즐비한 정동은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고 전파되는 글로벌 타운이었다.

그중 한국인,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함께 어우러져 전 과목을 영어로 수업받고, 매주 토요일마다 의제를 정해 토론식 교육을 한 배재학당은 신교육의 현장이었다. <사서삼경> <논어> <맹자>와 같은 한문학에서 나아가 물리, 화학, 지리, 천문학, 광학, 체육, 음악, 미술 등 신학문을 배우고 접하면서 재학생들은 열린 사고를 갖게 되었다. 배재학당이 주시경, 나도향, 김소월 등 근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을 양성할 수 있었던 것도 혁신적인 교육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배재학당 창립자 아펜젤러는 교육을 받으러 오는 양반들에게 ‘하인을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라는 지침을 내려야 할 정도였다. 늘 하인을 대동하던 양반들의 습성과 관습을 바꾸는 것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자동차에 관한 사람들의 관점 또한 마찬가지. 프리미엄 세단은 쇼퍼드리븐카(운전 기사를 두고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K9은 뒷좌석을 중시하는 고급차의 품격을 유지하되 주행감을 즐기는 운전자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혁신을 꾀했다. 서로 상반되게 여겨지는 요소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역발상 자체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K9은 스티어링 조타감을 개선하고, 험로 주행 시 충격을 분산시켜 역동적인 주행 성능과 최상의 승차감을 구현했다.

또한 ‘전자제어 에어서스펜션’은 고속 주행 시에는 차고 하향으로 차체 안정성을 향상해 승차감이 편안하다. 뿐만 아니라 오너 드라이버가 운전의 묘미를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첨단 장치를 탑재했다. 속도와 내비게이션, 각종 안전운행 경보 등을 띄워 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를 비롯해 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을 경우 경고등과 경고음을 통해 운전자에게 알려주는 후측방 경보 시스템, 주차 시 차량의 앞·뒤·좌·우를 보여주는 360도 어라운드 뷰시스템 등이 주행의 편의를 돕는 것. 그런데, 최근 들어 대형 세단의 운전석 강화가 세계적 추세라고 한다. ‘뒷좌석에 앉는 오너’의 감성을 중시하던 시점에서 벗어나 ‘앞좌석에 앉는 오너’의 만족도 또한 고려하는 것. 이즈음, K9에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배재학당
© 배재학당 역사박물관
배재학당은 1885년 미국인 선교사 헨리 게르하트 아펜젤러(1858~1902)가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근대교육기관이다. 고종(1852~1919) 황제는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학당(培材學堂)’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2008년 7월, 배재학당 역사박물관(관장 김종헌)으로 새롭게 태어난 배재학당 동관(서울시 기념물 제16호)은 1916년 준공한 유서 깊은 근대 건축물로 아펜젤러가 전인교육을 실천한 공간이자 수많은 근대 지식인을 배출한 신교육의 요람이다. 근대교육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소장품과 함께 상설전시장, 기획전시장, 체험교실, 세미나실 등을 갖추고 있다. 월요일과 공휴일 휴관.

문의 02-319-5578, http://appenzeller.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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