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오너이니 으레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는 냉철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를 직접 만나기 전까지는. 굴지의 제조업체를 이끄는 김영재 대표는 한마디로 풍부한 감수성의 소유자다. 우리 곁에서 조금씩 사라져가는 여러 존재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그의 눈빛에선 쓸쓸함이 묻어난다. 자신이 지난 30년간 공들여 찍은 사진 속 풍경들처럼.
기록의 의무
김영재 대표는 어릴 때부터 워낙 예술과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이다. 젊은 날의 한때를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에 바친 경험이 있다. “군대 가기 전에는 음악 디제이로 활동했고, 다녀와서는 미술을 했다. 그림은 물론이고 금속공예에도 재미를 붙였다. 아직 집에 당시 만든 작품이 여러 점 남아 있다.” 그의 주변에 문화·예술 관계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다 이 같은 전력 때문이다. 최근에는 양평의 별장에서 1970년대 음악다방 스타 DJ 정규호를 비롯한 지인들 몇이 모여 음악감상회를 연 것이 세간의 입소문을 타기도 했다.
7번 국도 그리고 고독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김 대표의 안타까움은 7번 국도에까지 가 닿는다. 직선도로가 들어서면서 폐쇄의 위기를 맞은 해변도로가 4년 전부터 그의 관심을 끈 것이다. 동해 7번 국도변의 여러 소도시를 오가며 촬영한 그의 사진에서는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외로움이 묻어난다. 특히 비가 올 때나 태풍이 몰아칠 때는 동해로 향할 수밖에 없다는 그는 거친 자연의 ‘화(火)’가 쓸려나간 자리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낯익은 고독을 쉴 새 없이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 사진에는 유독 여백이 많다. “쓸쓸한 느낌이 내게는 편하고 익숙하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울고, 그 다음에는 무언가를 온전히 다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런 우리는 근원적으로 쓸쓸할 수밖에 없는 존재가 아닐까.”
김 대표의 이 같은 감수성은 내년 10월 열릴 개인전에서 아낌없이 발휘될 예정이다. 양희은이 부른 노래 ‘세노야’를 메인 테마로 잡아 구상 중인 전시에는 7번 국도에서 촬영한 사진들이 총출동한다. “집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세노야’를 듣는다. 노래 속에서 뭔가 또 다른 것을 찾으려고. 그러다보면 더 우울해지는 거다(웃음).” 물론 그 우울함이 작업에는 더없는 양분이 될 터. 두 번째 개인전을 앞둔 김 대표는 각오도 남다르다. “좀 더 스킬을 보완해 완벽에 가까운 사진을 찍도록 하겠다. 욕심을 부리겠다.” 지금 자신이 몰두하고 있는 주제에 더 깊이 다가서고 싶다는 김 대표는 “인간 삶의 현장을 찍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한다.
행복한 순간
사진에 대한 김 대표의 정의는 단순하지만 명료하다. “사진이란 행복이다. 내가 걸어온 흔적이 남은 거니까.” 그도 그럴 것이 기업가에게 시간은 더욱 가차 없는 법. 언제나 남보다 한발 먼저 새로운 뭔가를 개발해야 하니 자연히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흔적을 남길 틈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김 대표에게는 예외다.
“시간이 지난 후 예전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카메라만 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김 대표는 요즘도 곧잘 방방곡곡을 떠돈다. 한번 출사에 나서면 3~4일은 보통이다. 그의 지극한 ‘사진 사랑’이 혹여 일에 지장을 주지는 않을까. “전혀 지장 없다. 꼭 회사에 앉아 있다고 해서 성과가 있는 건 아니니까. 출사 가서 사업 관련 아이디어를 얻어 오기도 한다. 직원들도 다 응원해준다(웃음).” 더욱이 기업가로서 맞서야 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 앞에 사진은 오히려 보탬이 된다고.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보다 차분하게, 여유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훌륭한 멘토 같은 존재로 말이다.
김영재 대표는 1987년 (주)세한프레시젼(전신 세한정밀)을 설립했다. 도어락 전문 제조업체 세한프레시젼은 22년 전 국내 최초로 도어핸들을 제작한 회사로 유명하다. 현재는 첨단 도어 시스템 개발에 주력하고 있으며, (주)세한루체를 통해 이탈리아의 시스템도어 수입을 병행하고 있다. 김 대표가 사진을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 지금껏 한 번의 개인전과 서른다섯 번의 그룹전을 열었다. 지난 2009년에는 대한민국사진대전 특선에 입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