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이 된 공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바로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공자와 같은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지언정 우리에게도 예순은 온다. 마음이 아무리 청춘이라 한들 피해갈 수 없다. 그 예순이 찾아오기 전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들.
사전에서 말하는 노인(老人)은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다. 몇 살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법적으로도 마찬가지. 노인의 나이를 가리키는 내용은 없다. 보통 60세 혹은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는 있지만(노령연금 수혜 연령은 65세!), 이미 옛말이 돼버렸다. 60세든, 65세든 나이가 들어 늙은 사람이라고 보기에 너무 젊다. 과장을 좀 섞자면 아직 청춘이라 해야 옳다.
그렇지만 20~30대의 청춘과는 분명 다른 청춘이다. 무엇이 다른지는 40대와 50대의 격동(!)을 지나다 보면 느끼게 마련. 다수의 전문가는 예순을 인생 2막(혹은 3막)을 여는 시작점으로 본다. 그간의 인생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도대체 어떤 인생을? 이에 대해 우리는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왜?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청춘이니까. 과연?). 뭘 준비해야 할지도 도통 모르겠다.
매스컴에서는 온통 금융이나 일자리, 건강 등의 정보를 쏟아낸다. 물론, 건강하고 풍요로운 노후는 중요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준비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60대의 역할과 가치, 그리고 우리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 같은 것. 이것들을 중심으로 60대를 위한 준비를 시작해보자. 고리타분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런 생각이나 좌표가 우리의 인생 2막을 180도 바꿀 것이다.
요즘들어 부쩍 시니어란 단어가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 같다. 한국의 시니어 계층은 세칭 베이비붐 세대라 불리는 1955~1963년생을 지칭한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 인구의 14.6%. 가난한 어린 시절을 지나 산업화, 민주화,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급격한 변화 속에서 국가 성장을 이끌어낸 세대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은퇴 쇼크 및 노후 불안의 가능성을 지닌 계층이기도 하다.
현재 50대를 지나고 있는 이들 세대는 퇴직을 앞두고 있거나 혹은 몇 년 전에 이미 퇴직을 겪었다. 그러나 예전의 선배들과 달리 퇴직 후에도 여전히 활발한 사회활동을 이어간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60대는 ‘늙은이’라기보다 ‘나이 든 젊은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20~30대처럼 살아서는 곤란하다. 승리에 목매며 매사에 아등바등 열성을 쏟을 순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60대에 필요한 건 액셀러레이터가 아닌 브레이크일지도. 속도를 줄이는 지혜 말이다.
새로운 나
우리는 흔히 태어나서 직장생활을 하기까지의 30여 년을 ‘퍼스트 라이프(first life)’, 직장생활을 시작해 정년 때까지의 30여 년을 ‘세컨드 라이프(second life)’, 그리고 자녀를 모두 키우고 오롯이 자신의 문제에 집중해야 할 이후의 30여 년 세월을 ‘서드 라이프(third life)’로 규정한다. 60대는 바로 서드 라이프, 제3의 삶이다. 말하자면 이 시기는 진정한 자신을 찾고, 자신의 일(work)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시기다. 과연 어떻게?
최근 은행에서 정년퇴직한 A 씨. 그는 치열한 업무 경쟁으로 자신과 가족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으로만 달려온 지난 30여 년의 세월이 허무하기만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조금씩 주변을 돌아보며 자신에게 충실하고 싶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 끝에 어릴 때의 꿈이 사진가였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 길로 A 씨는 망설임 없이 카메라를 들었다. 시골의 돌담길과 징검다리를 찾아 집중적으로 촬영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 찍은 사진들을 모아 주제별로 사진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50대 남성이라면 한번쯤 A 씨와 같은 위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법. 그럴 때는 당황할 것이 아니라 우선 자신을 추스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치열하게 살아온 과거를 밑거름 삼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자신을 찾는 행위. 잘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또 다른 나가 존재한다.
사회 속 역할 찾기
예순은 ‘진짜 어른’이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에 어울리는 사회적 책무도 필요하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들과 비교했을 때 정서적 ·경험적으로 많은 자산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이 같은 차별성을 뚜렷이 부각한다면 시니어 개개인의 가치는 충분히 빛을 발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창조경제의 실천 방안으로 청년 창업을 장려하고 있다. 여기에 60대 시니어의 경험과 관록이 더해진다면? 젊은 청년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시니어들의 경험, 연륜과 만나 건강한 경제 주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60대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인생을 관조하는 시기인 동시에 자신들의 자산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자신의 가치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 분명한 건 우리 사회에서 시니어의 경험과 연륜은 분명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지나온 퍼스트 라이프, 세컨드 라이프를 되돌아보고 다가올 서드 라이프에는 자신에게 더 충실하자. 그리고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INTERVIEW | 얼마 후 나의 60대는?
지극히 평범한 50대 남자들. 그들이 불현듯 생각해본 자신들의 60대에 대해 말했다.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
박용대 강남시니어플라자 관장
시니어 복합여가 ·문화공간 강남시니어플라자의 박용대(59) 관장은 불과 4개월 후면 예순을 맞는다. 60대를 “인생이란 마라톤에서 반환점을 도는 시기”라고 정의하는 박 관장이 꿈꾸는 60대는 그간 쌓은 지식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 재능기부나 후원, 봉사 등의 방식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한평생 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받았다. 그런데 고작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산다면 얼마나 협소한 사람이 될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게 60대의 가장 큰 가치라고 본다.”
그런 면에서 강남시니어플라자는 박 관장의 소망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공간. 지난 2011년 강남구청이 설립한 강남시니어플라자는 현재 150여 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회원은 7000명에 육박한다. 이곳에서 이미 자신의 소망을 조금씩 실현해가고 있는 박 관장은 시니어들이 행복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최근에는 시니어들이 인문학에 대한 열정이 강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오페라 감상에 대한 강의를 맡아 진행하기도 한다. 이 같은 활동에는 몇 년 전 사회복지대학원을 수료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박 관장은 25년간 사회생활하며 잊은 공부를 대학원에서 보강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사회복지라는 테두리 안에서 시니어들뿐 아니라 청소년, 장애우, 실직자 등 점차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박 관장은 자기 관리 및 투자에도 열심이다. 헬스센터에서 매일 1시간씩 운동하고, 시간이 나는 대로 서울 근교의 산에 올라 심신을 단련한다. 여가 시간에는 클래식 음악에 푹 빠져 지낸다고. 바흐나 모차르트 CD를 항상 옆에 둘 정도다. “지난 여름휴가 때는 오페라를 보러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과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DVD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음악의 현장감과 무대 연출에 큰 감명을 받았다”. 강남시니어플라자 회원들과 함께하지 못해 안타까웠다는 그의 이 같은 경험은 물론 오페라 감상 강의에서 유감없이 드러날 터.
이 밖에도 박 관장은 계획이 많다. “노년의 삶을 정리하는 것은 물론, 다음 세대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자서전 쓰기 운동’을 벌이고 싶다. 위인이 아닌 우리 주변의 평범한, 그러나 인생을 가치 있게 산 이들의 기록을 남겨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을 찾겠다”
이은재 에이유온그룹 회장
의료기 전문업체 펄스온생명공학 등 4개 업체를 자회사로 둔 에이유온그룹의 이은재(54) 회장. 이 회장 역시 ‘노인’, ‘시니어’ 등의 단어가 생소하기만 하다. “몸은 점점 60대로 가고 있지만 마음은 오히려 청춘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친구들과 만나도 20~30대 시절 얘기만 하게 된다.” 몸과 마음의 괴리가 깊은 60대를 이 회장은 “존재감을 잃을 수도 있는, 이방인 같은 시기”로 명명한다. 신체적 연령과 정신적 연령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때라는 것.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게 마냥 쓸쓸한 일만은 아니다. 삶의 지혜가 그만큼 축적될 테니까 말이다. 단, 노년의 지혜와 경험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위해선 전문적인 교육이 필수라고 이 회장은 말한다. “제2의 인생은 노는 게 다가 아니다. ‘댄스교실’ 같은 건 어쩌면 극히 소수의 얘기일지 모른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 회장이 60대를 겨냥한 모토는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 스스로가 자신의 존귀함을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혹여 사회가 나를 내몰더라도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나여, 여태까지 수고 많았다. 내가 널 인정한다’고 말해주자. 외부의 평가와 기준에 자신을 내맡기지 말자.”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아르바이트로 힘들게 마쳤다는 이 회장. 얼마간 직장생활을 하다 사업을 시작했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사업 실패 후 다시 일어서는 과정에서 그는 깨달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세상도 결코 나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값진 사실.
이 회장은 60대의 자신 모습을 지금의 연장선상에서 그린다. “5년 후쯤 회사가 코스닥에 상장되면, 1년 정도 기반을 다지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 다음엔 내 능력을 신임투표에 부칠 생각이다. 60% 이상 찬성표가 나오지 않으면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고, 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 활동하고 싶다.” 최근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것이 60대인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닐까.” 그런 그는 작은 시골마을에서의 목회 활동부터 해외동포 교육까지 다양한 방면에 뜻을 두고 있다. 지금처럼 변함없이 에이유온그룹의 오너로 있게 된다면? “섬진강 발원지인 고향 전북 임실을 기점으로 힐링타운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시니어들의 지친 심신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예순에 첫삽을 뜨지 않을까 싶다.”
끝으로 이 회장은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강조한다. “가족의 한 마디 응원이 험난한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이 된다. 그간 일에 쫓겨 가장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못한 것 같다. 60대에는 반드시 가족과 화합하는 좋은 가장이 되겠다(웃음).”
“무리하게 도전하는 대신 평화롭게 살겠다”
이재희 바이크앤드 대표
수입 생활자전거 유통 ·판매업체 바이크앤드의 이재희(58) 대표. 그는 아직 60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준비랄 것 없이 여기까지 왔다고. “그간 나이조차 제대로 세지 않고 살았다(웃음)”는 이 대표는 “비는 오는데 윈도브러시 없이 고속도로를 운행해야 하는 느낌”이라고 다가올 예순에 대한 공포(!)를 표현한다. 하지만 그가 꿈꾸는 60대는 분명 있다. “우리 세대가 성공만 좇아 맹목적으로 달려온 세대 아닌가. 이기려고 아등바등한 게임이 여태까지의 인생이었다면, 예순 이후의 인생은 스포츠를 하고 싶다. 싸움이 아닌 스포츠를.” 어린 나이에 사업을 시작하며 우여곡절을 경험한 이 대표에게 40~50대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60대엔 보다 여유를 가지고 삶을 일구고 싶다는 말. “기회가 된다면 여행을 하고 싶다. 지금껏 어딜 가도 출장으로 간 게 전부인데…. 그마저도 급하게 지나쳐 왔다. 원시림으로 뒤덮인 일본 야쿠시마 섬 같은 곳에서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자전거를 탈 수 있다면.”
6년 전,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그간의 ‘머리 아픈 사업’들을 과감히 정리하고, 자전거 유통 ·판매업을 시작했다는 이 대표. 자전거가 좋아 자전거를 일로 삼은 그이지만 라이딩은 1년에 고작 두세 번밖에 다니지 못했다. 그만큼 바빴다. 그래서일까. 10년 전 잠깐 배운 드럼 연주도 다시 도전하고 싶고, 최근 관심을 갖기 시작한 팝핀댄스도 시작하고 싶다는 이 대표는 그럼에도 자신의 이 같은 ‘버킷리스트’를 조금은 경계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버킷리스트를 버릴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까지 쫓기며 살았는데 예순이 되어 또다시 못 다한 것에 집착하면 인생이 정말 피곤할 것 같다. 무리해서 도전하거나 억지로 애쓰지 않겠다.” 예순이 되면 그저 평화롭고 유쾌하게 살고 싶다고.
이 대표는 60대에 대한 준비는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금융 같은 실질적인 준비도 좋지만, 그보다는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자연히 잃게 되는 것들을 인정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고, 자식도 언젠가는 품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런 것들에 대한 준비, 상실감에 대한 준비 말이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집착하면 불행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