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가져온 메시지 없어요, 묻지 마세요"

"북한은 열린 태도로 맞아 줬고, 적십자와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주의적 사업에도 뚜렷한 관심을 보였다."

올해로 창립 150주년을 맞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의 피터 마우러(Peter Maurer) 총재가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했다. 국제적십자위원회가 남북한을 동시에 방문한 것은 21년 만의 일이다. 마우러 총재는 지난 20∼23일 북한을 다녀온 데 이어, 2박 3일 일정으로 방한했다.

각국의 적십자사가 회원으로 있는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은 자연재해나 재난이 발생한 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반면, 국제적십자위원회는 무력 충돌이나 분쟁 지역에서 인도주의적 구호 활동을 펴고 있다. 2002년부터는 평양에 사무소를 두고 의료 지원 사업을 벌여왔다.

임기 2년째인 마우러 총재는 "ICRC는 전통적으로 부상병 치료에 탁월한 전문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지난 10여년간 팔다리를 잃은 북한 환자들에게 의수·의족을 지원하고 재활 치료를 실시해 왔다"고 밝혔다. ICRC 북한 사무소는 현재 낙랑재활치료센터를 비롯해 평성·사리원·함흥·개성에 있는 4개 도립 병원에 정형외과·재활 치료를 지원한다. 정형외과 의사와 물리치료사에 대한 교육도 병행한다. 그는 "북한은 의료 지원 외에 식수 공급이나 수질 관리 사업에서도 ICRC와 협력하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ICRC는 시리아 같은 분쟁 지역에서 2500만명에 대한 식수 공급 사업을 15년 이상 실시해왔다.

마우러 총재는 북한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외교·보건 당국자 등을 만났다고 했다. 방한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외교·통일·국방 장관과 면담했다. 하지만 스위스 외교부 장관 출신인 마우러 총재는 "적십자는 철저히 중립적 태도로 인도주의적 지원에 집중하기 때문에 특정 국가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상황에 대해 평가할 처지가 아니다"면서, 북한의 정치 상황 등에 대한 질문에는 극히 말을 아꼈다. 또 "북한이 우호적 태도로 협력 의사를 내비쳤다"면서도 "한국 정부에 전달할 특별한 메시지를 따로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마우러 총재는 "정전 60주년을 맞는 한반도에서 눈에 띄는 무력 충돌은 드물지만 여전히 전쟁 후유증은 남아 있다"고 하면서 남북 분단으로 생긴 이산가족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당장 몇 가족이 상봉하게 되는가에만 관심 쏟을 것이 아니라, 모든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지속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ICRC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또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역할이 커지는 만큼 한국 젊은이들이 ICRC 같은 국제적 기관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바람도 비쳤다. 그는 "현재 ICRC 본사 중견 직원 중에는 한국인이 한 명밖에 없다"면서 "전쟁의 폐허를 딛고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한국의 경험을 전할 젊은이들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