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던 이웃 백화점, 전통시장 든든한 지원군 되다

광주광역시의 대표적 재래시장이었다가 버스터미널 및 전남도청 이전, 대형 유통업체 입점으로 급속히 쇠락했던 동구 대인시장이 깨어나고 있다. 상품 진열과 서비스가 눈에 띄게 달라지고, 고객도 늘어나는 등 활기를 되찾고 있다.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은 재래시장의 경쟁 상대인 인근 롯데백화점 직원들이다. 지난 2월 시장과 백화점이 '활기찬 전통시장 만들기' 협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생긴 변화다.

롯데백화점 광주점의 20대 여성 디자인 전문가 5~6명은 지난 20일 대인시장 내 한 식료품 점포를 찾아 북어·김·땅콩 등 상품을 재배치했다. 이들은 상품명과 원산지, 가격을 적은 고급스러운 원산지 표지판을 세웠고, 건어물과 견과류는 투명한 비닐과 한지(韓紙)로 만든 세련된 용기에 담아서 배열했다. 어지럽게 섞인 상품이 종류별로 새 자리를 찾아 말끔하게 정돈됐다.

"보기에도 좋지만, 무엇보다 상품을 쉽게 찾을 수 있어요." 작업을 지휘한 김병인 롯데백화점 디자인팀장은 "고객이 한눈에 상품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했다. 점주 김혜경(53)씨는 "상인대학 같은 교육 프로그램에서 배우긴 했지만, 생각뿐이었다"며 "이렇게 직접 시범을 보여 주니 이제야 제대로 알 것 같다"고 했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떡 가게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벌였다. 진열대 아랫부분을 '힘내라 재래시장'이라고 쓰인 펼침막으로 장식했고, 미리 만들어 온 걸개 간판도 걸었다. 단 30여분 만에 가게는 백화점 판매 코너처럼 산뜻하게 변신했다. 구경 온 상인들은 "우리 가게도 예쁘게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19~20일 이 시장 점포 10곳이 이렇게 새 모습으로 태어났다.

롯데백화점 광주점의 성공적 상생협력 활동은 롯데 본점이 이 사업을 전국적으로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시장 상인들로부터 감사패를 받은(지난 7월) 것도 광주점이 처음이다. 협약 이후 백화점은 과학적 진열 방법과 위생 관리, 소방 전기 안전 분야 지원에 나섰다. 12명의 분야별 전문가가 '지역상생연구회'를 구성해 매월 두 차례 상인들에게 고객맞이 자세와 불만 응대법 등 백화점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또 백화점 주차장을 시장 고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상인들이 회의·모임·교육을 진행할 공간도 빌려주고 있다.

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이은심(여·56)씨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단체 손님 받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제는 멀리서도 손님들이 찾아온다"며 "평일 손님이 10%쯤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고은성 롯데백화점 과장은 "소문이 나면서 주차장을 이용하는 시장 고객이 점차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은 시장 고객들을 상대로 경품 이벤트를 수시로 진행하고, 점포마다 포장 봉지와 쇼핑 손수레도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홍정희(여·65) 대인시장상인회장은 "우리에게 필요한 일을 백화점이 먼저 찾아내 도움을 준다"며 "활력 잃은 재래시장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유통업체가 골목 상권을 침해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풍토에서 재래시장과 백화점의 '상생 실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류민열 롯데백화점광주지역장은 "전통시장과 백화점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우리가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