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현우의 팝 컬처] 배철수 '感電 30주년'이 특별한 이유

올해는 배철수 감전 사고 30주년이 되는 해다. 뭘 그런 것까지 몇 주년을 따지느냐고 할 수 있지만, 음악계에서는 '감전 30주년 기념 공연'도 진지하게 추진됐다. 당시에 TV 생방송을 지켜봤고 현재 음악 담당 기자인 입장에서, '배철수 감전 30주년'은 여러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1983년 3월 20일 일요일 저녁 KBS 1TV '젊음의 행진' 마지막 순서는 송골매였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모두 다 사랑하리'가 실린 이 밴드 최고 히트작이 나온 지 1년쯤 지난 때였다. 당시 '젊음의 행진'은 송승환과 왕영은이 사회를 봤으며, 라이브 음악과 콩트, 개그가 뒤섞인 프로그램이었다.

방송 종료를 4분쯤 남기고 송골매가 등장했다. 배철수는 무대 중앙의 마이크 두어 걸음 뒤에서 '그대는 나는'의 기타 전주를 연주했다. 이윽고 그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온몸이 경직돼 부르르 떨며 뒤로 넘어졌다. 이어 송승환이 뛰어나와 "생방송 도중 배철수씨가 감전된 모양이다. 죄송하다"며 황급히 프로그램을 마무리했다. 누군가 그 뒤로 배철수를 부축해 스튜디오 밖으로 데리고 나가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생방송됐다. 방청석에서는 여자 팬들의 비명이 생생하게 들렸다.

당시 동영상이 공개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이전까지는 다른 사고 장면을 희미하게 합성한 영상이 '배철수 사고 영상'이란 이름으로 돌아다녔다. 실제 동영상이 너무 끔찍해서 뉴스용으로 만들어 낸 영상이란 소문도 함께 돌았다.

당시 조선일보를 찾아보니 사회면에 이 사고가 보도됐다. (☞ 해당 기사 PDF 보기) 이 기사에 따르면 배철수의 기타 앰프에 접촉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KBS 기술진이 "연주 중 마이크를 잡으면 안 된다는 것은 상식적 금기 사항"이라고 설명했다는데, 누가 이렇게 황당한 설명을 했는지 궁금하다.

배철수는 훗날 "마이크가 비뚤어져 있어서 바로잡으려고 만진 순간 감전됐다"고 말했다. 그는 뒤통수가 찢어지고 손발이 터지는 상처를 입었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아 1990년 '모여라'가 실린 9집 앨범을 낼 때까지 송골매 리더로 활동했다.

 

감전 30주년의 당사자가 당시 최고의 한국 록 밴드였던 송골매라는 점에서, 지금의 지상파 TV 음악 프로그램들을 돌아보게 된다. 당시만 해도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성장한 밴드가 황금 시간대 TV 프로그램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대형 기획사가 만들어 낸 '음악 상품'들이 프로그램을 도배하는 지금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물론 지금의 기획사 역할을 했던 음반 회사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겠지만, 당시 음반 회사들은 적어도 뮤지션을 발굴했지 인위적으로 제조하지는 않았다.

뮤지션이 생방송 도중 감전됐다는 것은 그의 기타와 마이크가 전원에 연결돼 있었다는 것이다. 전기기타를 전기 앰프에 연결해 연주하는 상식이 통하던 시대였다. 요즘엔 립싱크도 모자라 '핸드싱크', 즉 전기에 꽂지도 않은 빈 기타를 들고 나와 허수아비 짓을 하는 '아이돌 밴드'도 있다. 이런 밴드는 음반 녹음도 모두 객원 연주자들을 돈 주고 사서 쓴다. 이들에겐 기타나 드럼이 모자나 장갑 같은 소품일 뿐이다. TV는 이런 엉터리 기획 상품을 '한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포장한다.

1990년 MBC FM '배철수의 음악캠프' DJ가 된 감전 사고 당사자는 지금까지 23년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나의 최대 고민은 청소년들이 팝송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팝 음악은 영미권에서 온 것이고 여전히 좋은 음악도 영미권에서 나오고 있는데, 요즘 청소년들은 국내 대형 기획사에서 만든 음악만 듣고 있으니 한국 대중음악이 발전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 주장의 요지였다.

'배철수 감전 30주년 공연'은 드러머이자 제작자인 남궁연의 아이디어다. 그는 신대철, 김도균 같은 한국 최고 기타리스트들을 무대에 세워 '감전 사고에도 다시 무대에 섰던 배철수의 정신'에 헌정하는 공연을 벌이고, 마지막 순서로 배철수 무대를 계획했다. 그는 "한국전기안전공사에 후원을 요청할 생각"이라고 했다. 장난기가 느껴지는 기획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기타를 연주하는 배철수를 보고 싶은 팬들은 은근히 남궁연의 기획을 응원하고 있다. 배철수는 그러나 아직 이 공연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배철수는 며칠 전 환갑을 맞았다. 최고 인기 밴드로 TV 생방송에 나왔을 때 나이의 두 배가 됐다. 그가 한국항공대 밴드 '활주로'의 리더로 TBC 해변가요제에 나와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부른 게 1978년이다. '감전 30주년'이 아니라 '데뷔 35주년'으로라도 이 로커의 무대를 다시 한 번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