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車 전성시대… 딜러는 잔혹시대

요즘 웬만큼 땅값 비싼 번화가엔 어김없이 수입차 전시장이 들어서 있다. 지난해 팔린 수입 신차는 13만여 대로, 국내에서 팔린 승용차 전체의 10%를 돌파했다.

해외 업체가 만든 차를 국내로 들여오는 것은 '임포터(importer)'지만, 이 차들을 사려는 소비자를 직접 만나 계약서를 쓰고, 차를 건네고, 타는 동안 정비를 해주는 것은 '딜러(dealer)' 몫이다. 예컨대 BMW의 한국 지사인 BMW코리아가 차를 들여오는 임포터, 코오롱모터스가 딜러다. BMW코리아와 코오롱모터스는 모두 일정 수준의 판매 마진을 먹고산다. 같은 브랜드의 동일 모델이라도 판매 조건과 서비스 품질이 다른 것은 각기 다른 사업자, 즉 다른 딜러가 차를 팔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기준으로 국내 120여개 딜러사(社)는 전국적으로 총 28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평균적으로 매장 한 곳당 연간 약 470여대 차를 판다. 현대차 매장 한 곳이 평균 830대의 차를 파는 것과 비교하면 시장 규모에 비해 딜러 수가 많아 경쟁 상황이 2배 치열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쉽지 않은 싸움에 뛰어든 이들은 과연 누구이며 얼마를 벌어들이고 있을까.

◇120개 딜러의 땅따먹기 경쟁

한국수입자동차협회 윤대성 전무는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 개방 역사가 26년 됐지만, 그 사이 딜러 시장 판도는 수차례 격변했다"고 말한다. 정부가 이른바 '외제차'의 국내 판매를 공식 허용한 것은 88올림픽을 앞둔 1987년. 이때 대기업 상사들이 발 빠르게 수입차를 들여왔다. 코오롱상사(BMW), 효성물산(아우디·폴크스바겐), 한진(볼보), 동부산업(푸조), 두산(사브), 금호(피아트), 한성자동차(벤츠) 등이 그들이다. 윤 전무는 이들을 '1세대 딜러'라고 불렀다.

일부 갑부들만 외제차를 타던 시기를 지나 1997년 외환위기 직전엔 연간 수입차 판매량이 8000대에 달했다. 이때 BMW 등 외국 회사들이 한국에 직접 진출해 지사를 설립하기로 마음먹는다. BMW와 크라이슬러, 포드가 법인을 설립하면서 처음으로 임포터와 딜러 관계가 생겨났다. 종전 임포터 역할을 했던 대기업 중 딜러로 간판을 바꿔 달길 원하지 않은 곳은 시장에서 떠났고, 코오롱은 사주의 개인적인 애정 때문에 BMW의 최대 딜러(코오롱모터스)로 남았다. 이때가 2세대.

3세대는 수입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냄새를 맡고 달려든 이들이다. 대기업이 주류다. 일본 도요타가 캠리·프리우스 등 대중 도요타 브랜드를 들여오겠다고 선언한 2008년, 일간지에 딜러 모집 광고를 내자 무려 180군데가 연락을 했다. 최종 서류를 신청받은 결과, 이름 대면 알 만한 대기업 10곳을 비롯해 70여 군데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자금력을 앞세운 한 대기업은 "전국 딜러권을 달라"고 졸랐고, 당시 한 대기업 사주는 일본 게이단렌(經團連) 고위 관계자까지 만나 딜러권을 달라고 간청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대기업도 혹했지만…

현재 수입차 딜러를 하는 기업은 GS·LS·효성·KCC 등 10여곳을 헤아린다. "대기업이 동네 빵집까지 하느냐"는 비난 속에 슬쩍 사업을 접은 곳(두산)도 있다. 두산이 떠난 자리는 개인 사업자가 들어왔다. 그러나 모두가 기대했던 것만큼 시장이 성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이 드러났다.

대규모 서비스센터까지 갖춘 매장을 강남 한가운데 만들었던 한 대기업은 최근 이 자리를 일반 기업에 넘기고 외곽으로 빠져나왔다. 300억원대 투자금을 뽑으려면 매년 30% 이상 판매가 늘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치열한 경쟁 탓에 마진 마저 줄어들면서, 속 빈 강정 신세가 돼갔다. 통상 수입차 한 대를 팔기까지 임포터와 딜러는 합계 20~30%가량의 마진을 챙겨 반씩 나누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갈수록 마진이 박해져 급기야 마진율이 한 자릿수까지 떨어진 브랜드도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주로 땅 가진 개인 부자나 금융업체들이 딜러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막장 할인 혈투… 갈수록 마진 줄어

최근 한 일본 브랜드로부터 딜러권을 박탈당한 A사가 공정위에 낸 진정서에는 중소 딜러들의 벼랑 끝 경영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수입차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한 2006년 자본금 50억원으로 경기도 딜러권을 따낸 A사는 한때 5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금융 위기가 터지고 환율이 급변동하면서 판매가 줄어 결국 부채가 80억원까지 늘어났다. A사 대표는 "경영난을 이유로 본사가 마진율을 15%에서 13%로 2%포인트 깎았고, 차 한 대당 수백만원의 특별 할인 부담 때문에 사실상 우리가 남긴 것은 차 값의 2~3% 수준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업계 분위기는 살벌한 전쟁통이다. 선두권 업체에서 시작된 수백만원대 할인 행렬이 전체 브랜드로 퍼져, 이제는 소비자가 먼저 "길 건너 매장에선 500만원 할인된다던데, 더 안 해주면 안 산다"고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500만원 특별 할인' 같은 대규모 프로모션이 내걸릴 경우, 통상 임포터와 딜러가 250만원씩 반반 부담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딜러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인기 차량에 재고 차량을 끼워 공급하거나, 마진율을 예전보다 낮게 책정하고 "○○○대 판매 할당을 채워야 인센티브 형식으로 남은 마진율을 보전해주겠다"는 식의 밀어내기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독일차 딜러인 B사 관계자는 "월 임대료를 1억원씩 내야 하는 서울 강남 도산대로 딜러 중에는 한 대당 몇 십만원 남겨서 도저히 운영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 계열 딜러에게 타사 딜러가 돈을 꾸고, 꾼 돈을 받지 못해 소송을 내는 양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