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美 사회문제 고발한 영화, SF인 척하기는

2154년, 환경오염으로 황폐해진 지구에는 하층민들이, 호화로운 우주 정거장 '엘리시움'(천국)에는 상류층인 코디네이터스 계급이 산다. 멀리서 보면 벤츠의 엠블럼처럼 생긴 엘리시움은 완벽한 자연환경과 주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각 가정에는 모든 병을 순식간에 치료할 수 있는 기계가 한 대씩 있다. 반면 지구의 환자들은 병원에서 쫓겨나거나 치료 대신 진통제만 처방받는다. 돈을 내고 불법으로 엘리시움에 가서 치료를 받는 방법도 있지만, 단속에 걸리면 죽을 수 있다. 지구의 공장에서 일하다가 방사선에 노출된 맥스 드 코스타(맷 데이먼)는 치료를 위해 엘리시움에 가려 하고, 엘리시움의 국방부 장관 델라코트(조디 포스터)는 그를 잡으려고 용병 크루거(샬토 코플리)를 보낸다.

닐 블롬캠프 감독의 '엘리시움'의 배경은 140년 후 미래이지만, 드로이드(로봇)들만 제외하면 지금의 현실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층민이 사는 지구는 제3세계의 우범지대를 닮았고 특권층이 사는 엘리시움은 대저택들로 가득한 베벌리 힐스처럼 보인다. 전작 '디스트릭트 9'에서 이민문제를 다뤘던 블롬캠프 감독은 또 한 번 미국의 의료보험과 이민자 문제를 겨눈다. SF인 척하면서 미국, 혹은 이 세계가 직면한 위기와 부조리를 그려내는 블롬캠프 감독의 솜씨는 유효하며, 그가 창조해낸 디스토피아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곳에서 나는 악취와 답답한 공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액션은 밋밋한 편이고, 이야기도 단조롭지만 여기에 불만을 제기하고 싶지 않다. 그런 단점을 상쇄할 만한 장점이 더 많은 영화니까. 하지만 엘리시움에 대한 궁금증만큼은 지울 수가 없다. 만병을 통치하는 기계 말고는 별다른 장점이 없는 곳 같다. 화려한 대저택과 완벽하게 재단된 인공정원 안에서 드로이드가 갖다바치는 샴페인이나 마시고 산다면, 무병장수한들 그게 천국일까. 29일 개봉. 청소년 관람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