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 몸 속에 흐르는 피와 같은 것"

소피아 코폴라(42·사진)에게 영화는 '피'(血) 혹은 'DNA'와 같은 것이다. 그는 아버지인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74)가 '대부'를 연출하던 중에 태어났고, 생후 3개월 때 이 영화의 '세례식 장면'에 아기로 출연했다. 유년시절엔 필리핀에 차려진 '지옥의 묵시록' 촬영장에서 놀았고, 고(故) 구로사와 아키라 같은 거장 감독을 '아버지의 친구'로 알고 지냈다. 청년 시절엔 패션 사업가, 사진작가, 잡지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을 두루 거쳤지만 결국은 감독으로 안착했다. 첫 장편 '처녀 자살 소동'(1999)이 평단의 극찬을 받은 이후로 그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았으며, 네 번째 장편 '섬웨어'(2010)로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하지만 '과대평가된 감독' 목록에도 꾸준히 이름을 올렸다. "작품 자체보다 아버지 후광 덕을 본다"는 것이다.

◇"세 살 때부터 '컷' 외쳐"

소피아 코폴라는 다섯 번째 장편 '블링 링'의 국내 개봉(5일)을 앞두고 조선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코폴라'로 살아가는 것을 오히려 유쾌하게 긍정했다. "아버지나 가족의 영향을 받았느냐고요? 물론이죠. 전 세 살 때 처음으로 아버지가 일하는 현장에서 '컷'을 외쳤어요."

코폴라는 아버지 덕에 어린 시절 연기를 시작했지만,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대부3'(1990)에서 돈 콜레오네의 막내딸 '매리'역을 맡았다가 최악의 영화인에게 주어지는 골든 라즈베리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조지 루카스 감독의 '스타워즈1'(1999)에 출연하고 또 골든 라즈베리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는 "'코튼 클럽''페기 수 결혼하다' 등 아버지 영화의 크고 작은 역할로 연기를 시작했다. 연기가 너무 어려웠고, 카메라 앞에서 자신감이 점점 없어졌다. 하지만 그 경험으로 지금의 나는 배우들이 카메라 앞에서 어떤 느낌일지 잘 알 수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영화 현장은 하나의 인생"

'블링 링'은 패리스 힐튼이나 린지 로언 같은 유명인의 집을 턴 10대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겉보기엔 유복한 중산층 가정의 아이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어딘가 하나씩 결핍을 갖고 있는 10대들은 SNS와 스타들의 삶을 모방하는 데 모든 시간과 정력을 쏟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패리스 힐튼은 자신의 집을 이 영화의 촬영 장소로 기꺼이 내놨다.

소피아 코폴라는 이전 작품들에서도 '셀레브리티'(유명인)란 소재를 빼놓은 적이 없다. 아니, 그 자체가 셀레브리티다. 유명 감독의 딸이고, 루이비통에선 그의 이름을 딴 가방을 내놨으며 마크 제이컵스 향수 광고에도 출연했다. 이번 영화는 그가 잘 아는 세계를 궁금해하는 세상의 시선과 10대들의 일탈을 다룬 셈이다.

그는 "스타들의 라이프 스타일은 우리 문화의 일부고, 그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며 "가족적 가치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문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유명인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그들과 친구가 됐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착각한다. 온라인과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올해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개막작으로 소개된 이 영화에 대해 '유명인에 열광하는 21세기 문화를 웃기고도 예리하게 그려냈다'(시카고 선 타임스)와 '예쁘지만 공허한 이야기'(LA타임스)라는 상반된 평이 나왔다. 그는 "나는 그저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좋아하겠지만, 다른 누군가는 거부할 만한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그때그때 내가 공감하는 개인적, 사회적 이슈들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좋다"고 했다.

영화 촬영장에서 놀고, 연기하고, 다시 자신의 영화를 찍고 있는 소피아 코폴라. 그는 "영화 현장은 열린 마음을 갖고 자신의 위치에서 몰입하고 열정적으로 과정을 찾아가는 프로들이 있는 곳이죠. 그곳은 저에게 행복과 슬픔을 느끼게 하는 하나의 인생"이라고 했다.

☞'블링 링'은

1년여 동안 할리우드 스타들의 집에 침입해 300만달러(약 33억원)가 넘는 현금과 명품을 훔쳐오다 체포된 10대들의 실화를 다룬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은 '베너티 페어' 잡지 기사를 읽고 실제 범인들을 인터뷰해 사건을 재구성했다. 이들은 구글 검색을 이용해 스타들의 집 주소와 스케줄을 알아냈고, 훔친 명품을 몸에 두른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한국계 미국인 케이티 장을 비롯한 신인배우들과 엠마 왓슨이 명품과 스타, SNS에 집착하는 10대들을 연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