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증시 출렁여도 韓·中·대만은 선방

미국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해 돈을 푸는 것) 규모 축소 우려로 전 세계 신흥국 증시가 출렁이는 가운데, 한국·중국·대만 증시는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 3개국이 다른 신흥국과 비교해 뚜렷한 강점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위기에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다른 신흥국보다 낫다고 평가한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 경기 회복 시 같이 좋아지는 경제구조를 지닌 것도 매력적이라는 의견이 많다. 한마디로 위기에 강하고 기회에도 강하다는 뜻이다.

◇7월은 한국·대만, 8월은 중국 선방

지난 5월 22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양적 완화를 시사한 후 6월 내내 글로벌 증시는 다 같이 몸살을 앓았다.

차별화 조짐이 나타난 것은 7월부터다. 7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한국 증시와 대만 증시에서 각각 8억5255만달러(유가증권시장·코스닥시장 합산), 27억5539만달러를 순매수했다. 이 기간 한국 코스피지수와 대만 자취안지수는 각각 2.7%, 0.6% 상승했다.

8월에도 한국 증시에는 외국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8월 한 달 동안 외국인은 한국 증시에서 11억5001만달러를 순매수했다. 대만은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면서 외국인이 지난달 순매도했지만, 연간 기준으로 순매수 규모가 여전히 10억달러가 넘는다.

8월 한 달간 돋보인 성적을 낸 곳은 중국이다. 중국 증시는 미국 출구 전략 가시화와 경제성장 둔화로 지난 6월 10% 넘게 하락했다. 그러나 이후 중국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자 중국 증시는 다시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8월 한 달간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5.3% 올랐다.

◇뭐가 다르길래

이 3개국에 대해 국내외 증권 전문가들은 "위기에 강하다"고 평가한다. 미국이 돈줄을 조여 외국인 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가도 상대적으로 충격을 덜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와 비교했을 때 외환 보유액은 2396억달러에서 3297억달러(지난 7월 기준)로 늘었다. 중국의 외환 보유액은 3조4000억달러(올해 상반기 기준)로 전 세계 국가 중에서 가장 많다.

경상수지 역시 한국은 국내총생산 대비 0.3%(2008년) 수준에서 2.7%로 늘었다. 한국은 지난 7월까지 18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을 이어왔다. 중국 무역수지는 지난 4월부터 3개월 연속 흑자를 기록 중이다. 중국은 올 들어 1257억달러 무역 흑자를 내고 있다.

대만도 상대적으로 견고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지난 22일 신흥국들의 금융 위기가 부각되는 가운데 한국이나 대만 등의 여건은 양호하다"고 보도했다. AMP캐피털의 셰인 올리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경상수지가 흑자를 보이고 재정적자가 적은 국가들은 이번 혼란을 잘 이겨낼 것"이라며 한국과 대만을 지목했다.

◇선진국 좋아지면 같이 좋아

한국과 대만은 다른 신흥국보다 IT 비중이 높은 나라들이다. 한국은 스마트폰과 반도체, 대만은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많다. 미국의 IT 제품 및 관련 서비스 시장이 제일 크기 때문에 IT 업종은 미국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국의 출구 전략은 길게 보면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인 미국 경제의 회복을 뜻하는 것이라, IT 강국인 한국과 대만 입장에서는 호재다.

중국 역시 선진국 수출 비중이 높아 역시 영향을 받는다. 중국 경제 데이터 제공 기관인 CEIC에 따르면 중국 7월 수출 가운데 18.2%가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에서 나왔다. 유럽연합(EU)의 비중도 16.0%다.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에 수출하는 비중은 각각 2.5%, 1.5%, 1.9%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