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집에서 피아노 치면 아랫집 윗집은 행복하네

피아니스트 백건우(67)의 새 음반 재킷엔 얼굴이 약간 홀쭉한 30대 청년이 목에 머플러를 두른 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아내인 배우 윤정희가 30여년 전 파리의 이름난 카페 되 마고에서 찍은 사진이다. 연주자로서 이미 이룬 성취와 불투명한 미래 사이에서 고민했을 젊은 날의 백건우를 보여준다. 왼쪽엔 백건우보다 좀 더 앳된 모습의 슈베르트(1797~1828) 초상화가 비스듬히 눈길을 던진다. 즉흥곡과 악흥의 순간, 피아노 소품으로만 꾸민 슈베르트 음반이다.

"내 30대는 음악인으로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하는 고민과 압박에 시달렸던 때지요. 지금은 좀 더 평화롭고 느긋해졌다고 할까, 반세기를 음악과 살다 보니, 음악은 역시 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백건우가 새 음반에 실린 슈베르트 소품으로 꾸민 독주회를 서울과 여수, 대구에서 연다. 즉흥곡 1번에서 3개의 소품집 3번으로 갔다가 '악흥의 순간' 2번으로 넘어오는 식의 구성이다. "체르니 교본 치는 것처럼 순서대로 나가는 게 작곡가의 의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곡의 분위기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흐름을 따랐습니다."

30대 초반에 짜서 한두 번 연주했던 레퍼토리다. "그땐 음악의 아름다움에만 끌려 '만들어내겠다'는 생각이 앞섰는데, 지금은 편안한 마음뿐입니다."

"슈베르트 음악을 대표하는 것은 가곡"이라고 말한 백건우는 "이번 연주회는 피아노로 노래하는 슈베르트 가곡 독주회와 같다"고 했다. 1시간 20분 남짓한 연주회엔 중간 휴식이 없다. 온전히 슈베르트 음악에 깊이 빠져들기 위해서다.

일흔에 가까워진 백건우는 여전히 연습벌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피아노 소리를 들어야 하는 파리의 아파트 이웃들은 불만이 없을까. "아래층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어머니가 평생 클래식 FM을 즐겨 들으셨는데 병상에 누운 마지막 몇 달간 제 피아노 소리만 듣다가 행복하게 떠나셨다고요. 위층 젊은 부부도 막 아기를 가졌는데, 피아노 소리가 정말 좋대요."

백건우는 "이번 연주회도 슈베르트가 친구들을 모아놓고 열었던 작은 음악회 '슈베르티아데'처럼 편하게 음악을 즐기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건우 리사이틀, 6일 강동아트센터, 7일 여수 예울마루, 10일 대구 아양아트센터,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02)599-5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