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일도 없는데, 코리아 GDP 50兆 늘어난다… 'GDP 점프'의 비밀

지난달 31일 미 상무부는 작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6조2446억달러라고 수정 발표했다. 기존에 발표했던 15조6848억달러보다 5598억달러(3.6%)나 늘어난 것이다.

미국 내 주 가운데 GDP 순위로 5위인 일리노이주(5942억달러)나 6위인 필라델피아주(5113억달러)의 경제 규모만큼 GDP가 불어난 것이다. 미국인 한 사람당으로 따지면 1인당 GDP가 1800달러(약 197만원)씩 늘어났다.

하루 사이에 이렇게 미국의 경제 규모가 불어난 이유는 미 상무부가 GDP 산정 기준을 바꿨기 때문이다. '통계의 마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날부터 미 상무부는 예전에는 GDP에 포함하지 않았던 연구·개발(R&D)과 책·영화·음반 등 창조적인 경제 활동도 GDP를 산출할 때 반영하기로 했다. 미국에 앞서 같은 방식으로 지난 2009년에 GDP 산정 기준을 바꿨던 호주의 GDP 규모는 4.4% 불어났으며, 작년에 기준을 바꾼 캐나다는 GDP 규모가 기존보다 2.4% 늘어났다.

◇GDP 기준 왜, 어떻게 바꾸나?

GDP는 한 나라의 경제 규모를 숫자로 파악하는 수단이다. 일정한 기준에 따라 GDP를 산정한다면 과거와 비교해서 한 나라 경제가 얼마나 커졌는지, 다른 나라와 비교해 한 나라 경제의 크기는 얼마나 되는지 등을 손쉽게 비교할 수 있다. 또 1인당 GDP를 가지고 국민의 소득 수준도 비교가 가능하다.

이에 국제연합(UN)은 1953년 처음으로 국민소득통계 지침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세계 각국은 그 지침에 따라 GDP를 산정하고 있다. UN은 이후 1968년, 1993년, 2008년 세 차례 통계 지침을 개정했고, 각국은 자국의 사정에 맞춰 기준을 선택해 GDP 통계를 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기준으로 193개 UN 회원국 중 81%인 157개국이 1993년 UN 지침에 따라 통계를 내고 있었다.

미국·호주·캐나다 등이 발표하는 GDP는 2008년 UN이 수정한 국민소득 통계 작성 기준에 따라 GDP를 다시 산정한 것이다. UN의 기준은 갈수록 무형(無形)자산의 값어치를 GDP에 포함하자는 흐름인데, 이미 1993년 기준에서 소프트웨어, 광물탐사, 오락·문학작품 등의 취득 등을 GDP에 포함했다. 2008년 기준에서는 창조적인 활동인 R&D 등을 GDP에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예컨대 이제까지는 애플이 생산한 아이패드는 GDP 통계에 잡히지만, 아이패드를 개발하기 위해 들어간 연구개발비는 GDP에 산정되지 못했다. 아이패드를 만들기 위해 공장을 짓고 기계 설비를 설치해야만 '투자'로 여겨 GDP 통계에 넣었던 것이다.

이는 R&D에 사용한 돈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투자'이지만, 이제까지 GDP를 산정할 때엔 '비용'으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과거 기준에서는 GDP를 산정할 때 '투자'는 공장을 짓고 기계를 설치하고 도로·철도·항만·공항 등 기반시설을 만드는 것을 가리켰다. 하지만 앞으로는 R&D도 정당한 '투자'로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또 2008년 기준에서는 책·영화·음반 등 엔터테인먼트에 사용한 비용과 군사 무기를 구입하는 데 쓴 비용도 투자로 본다. 엔터테인먼트에 대한 지출을 지식재산권에 대한 투자로 해석하는 것이다. 영화가 한 편 제작되면 단순히 한 해의 극장 매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제작이나 판권에 대한 투자로 여러 해 동안 부가가치가 GDP에 반영된다고 파악한다는 것이다. 무기 구입은 국방 서비스에 대한 투자로 본다는 것이다.

이렇게 GDP 통계 기준을 바꾸는 것을 단순히 '숫자 놀음'이라 볼 수도 있지만, 실제론 정책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 성장을 중시하는 정부의 경우 과거와 달리 R&D가 성장 통계에 직접 영향을 주게 되므로, R&D 지원 정책을 강화할 유인이 생기는 것이다.

◇R&D 왕성한 나라, 성장률도 상승

그런데 산정 기준을 바꿔 GDP 규모가 늘어난다고 해서 매년 경제성장률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규모가 늘어난다고 해서 증가율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1929년 이후 GDP를 모두 다시 산정했는데, 만약 매년 R&D 투자 규모가 경제 규모와 같은 비율로 증가했다면 경제성장률은 기존과 같아진다. 그렇지만 만약 시간이 갈수록 R&D 투자 규모가 나머지 경제가 커지는 규모보다 더 늘어난다면 경제성장률은 높아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 경제 규모만 커지는 게 아니라 경제성장률도 높아지는 결과가 나왔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1929~2012년 미국의 연평균 성장률은 기존의 3.2%에서 GDP 산정 기준을 개편한 결과 3.3%로 높아졌다. 특히 2007~2008년 미국 금융 위기 시기의 경기 하락폭이 연평균 -3.2%에서 -2.9%로 둔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 때 R&D를 늘렸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어떻게 되나?

우리나라도 UN이 2008년 개정한 기준에 따라 GDP 통계를 개편하는 작업을 한국은행에서 진행하고 있다. 내년 3월쯤이면 새로운 기준에 따른 GDP 통계가 발표될 예정이다. 이 경우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창조적인 활동을 GDP 통계에 편입시키게 된다.

작년 9월에 한은이 개최한 국제 세미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GDP통계 기준을 바꿀 경우 우리나라의 총 GDP 규모는 기존보다 약 4%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우리나라의 R&D 비중과 거의 일치한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총 연구개발비는 49조8904억원으로 GDP 대비 4.0%를 차지하고 있다.

GDP 산정 기준 변경으로 GDP가 약 50조원 늘어난다고 하면 우리나라에선 대구(약 37조원)와 제주(약 11조원)를 합한 정도의 경제 규모가 늘어나게 된다.